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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EU 탈퇴 까다로워…영국, 분담금 절약 등 실익 못 챙길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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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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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기자

최근 유럽연합(EU)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몇 년 전까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금융위기로 한바탕 몸살을 앓더니 지난해엔 난민 수용 문제로 일부 국가가 국경을 폐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지난달엔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오는 6월 23일 치르기로 확정했습니다.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EU 관련 지식을 한 장에 담았습니다.

유럽 대륙이 평화·안전·자유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는 유럽 합중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한 연설에서 이같이 역설했다. 유럽 의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기 위해선 유럽 국가들의 연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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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연설은 유럽 내 공동체 발족에 불을 지폈다. 49년엔 유럽 통합을 도모하는 국제기구인 유럽평의회가 창설됐다. 뒤이어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58년 유럽경제공동체·유럽원자력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유럽 각지에서 일어났다. 이 세 기구는 67년 유럽공동체(EC)라는 이름으로 통합됐고, EC는 94년 1월부터 공식 명칭을 EU로 바꿨다.

뉴스 인 뉴스 <294> EU 흔드는 ‘브렉시트’
28개국 5억 명 GDP 2경2500조원
세계 최대 단일 시장으로 성장

49년 서유럽 6개국의 작은 회의체로 시작한 EU는 팽창을 거듭했다. EU는 지난달 기준 28개 회원국, 인구 5억 명에 국내총생산(GDP) 18조1240억 달러(2경25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으로 성장했다.

EU가입 절차는 무척 까다롭다. 가입신청서를 내고 후보국으로 인정받기까지만 수년이 걸리며, 후보국이 된 후에도 협상을 거쳐 정식 회원국이 되기까지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다. 모로코는 87년 신청서를 냈지만 접수조차 되지 않는 굴욕을 당했다.

EU는 93년부터 가입 후보국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코펜하겐 기준’을 마련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잘 시행되고 있는지, 소수자 권리를 포함해 인권을 폭넓게 보장하는지,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지 등의 조건이 코펜하겐 기준에 포함된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국가는 가입 신청을 내고 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 협상 과정에서 행정 기관인 EU집행위원회가 유럽연합법과 후보국 법 사이의 차이를 조율한다. 현재 터키·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세르비아·마케도니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6개 국가가 EU에 가입신청을 내고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다.

EU의 엄격한 가입 절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터키다. 터키는 49년 범유럽 기구인 유럽평의회에 가입한 데 이어 63년엔 유럽공동체 준회원국 협상을 체결했다. 87년에 정식으로 유럽공동체에 가입신청을 냈지만 99년 가입 후보국으로 인정받기까지 12년이나 걸렸다. EU측의 요구에 따라 사형제를 폐지하고 쿠르드어 방송을 허용하는 등 사회 개혁에도 힘썼지만 가입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터키 정부의 언론 탄압 수준이 심각하고 인권 의식이 낮다는 평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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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탈퇴 절차=가입만큼은 아니지만 탈퇴도 쉽지만은 않다. EU 역사상 국민투표를 거쳐 탈퇴한 국가는 그린란드가 유일하다. 덴마크의 속국인 그린란드는 73년 덴마크가 EU의 전신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할 때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정부의 결정에 따라 EC의 일원이 됐다. 79년 덴마크로부터 자치권을 얻어낸 그린란드는 82년 EC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고, 찬성 52% 대 반대 48%의 결과로 탈퇴를 결정했다.

탈퇴 과정은 험난했다. EC의 법적 근거였던 로마조약엔 회원국 탈퇴에 대한 사항이 명시되지 않았다. 탈퇴에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탈퇴한 국가와 EC의 향후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했다. 그린란드는 3년에 걸쳐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야 85년 비로소 EC에서 나올 수 있었다.

설령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영국의 EU 탈퇴는 그린란드보다 한층 험난할 전망이다. 국가 규모도 작은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해역 어업권을 제외하면 EC와 조율해야 할 이해관계가 많지 않았다. 영국은 EU 내에서 GDP 2위, 인구 3위를 자랑하는 강대국이다. EU의 대(對)영국 수출액이 전체의 16%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그만큼 탈퇴 후 지위를 놓고 다른 회원국과 극심한 갈등이 예상된다.

문제는 탈퇴 시의 협상 시한이다. 2009년 체결된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르면 탈퇴를 원하는 국가는 탈퇴 의사를 밝힌 지 2년 내에 나머지 회원국들과 탈퇴 조건 협상을 마쳐야 한다. 2년 내 협상에 실패하면 해당 국가는 EU 회원국 자격을 잃게 됨과 동시에 그 동안 EU 국가들과 맺고 있던 모든 협약의 효력이 중지된다. EU를 떠나더라도 유럽경제지역(EEA, 유럽 내 자유무역지대)이나 솅겐협정(유럽 국가 간 국경 개방 조약) 등 일부 협약은 유지해야 하는 영국으로선 반드시 피해야 할 결말이다.

정치·경제 전반에 걸쳐 영국과 EU 간에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2년만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결국 칼자루는 EU측이 쥔다. 영국으로선 협상 시한을 넘겨서 빈손으로 쫓겨나느니 불리한 협상안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탈퇴하려는 국가에 불리한 조항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의 앨런 렌윅 교수는 “리스본조약 50조는 EU 탈퇴를 어렵게 만들어서 감히 생각조차 못하게 하려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EU 탈퇴하게 되면=EU는 아니지만 EU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국가가 여럿 있다. EEA·솅겐협정에 모두 가입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은 EU 회원국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다. EEA 회원국은 EU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EU 역내 시장에서 무관세 혜택을 받으며, 그 대신 EU 법을 준수하고 EU 예산에 분담금을 지불해야 한다. 스위스는 EU와 EEA 모두 비회원국이지만 EU와 체결한 100여 가지 양자협정 덕분에 EEA 회원국과 거의 같은 혜택을 누린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EEA 회원국 중 하나인 ‘노르웨이 모델’이다. 노르웨이는 72년과 94년 EU 가입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두 차례 모두 ‘반대’가 약간 우세해 비회원국으로 남게 됐다.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에 비해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분담금을 덜 지불하면서도 관세 혜택과 무비자 이동 등 회원국과 비슷한 혜택을 누린다. 영국도 노르웨이처럼 EU를 벗어나 각종 규제나 분담금으로 인한 부담을 덜면서 EEA 회원 자격으로 경제적인 실익은 챙기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모델에는 한가지 중요한 결점이 있다. EU 정책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EU 비회원 유럽 국가들은 EU에서 참관인 역할만 할 뿐 의결권은 갖지 못한다. 에스펜 바르트 아이데 전 노르웨이 국방장관은 지난해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노르웨이는 EU에 돈을 내면서도 자국민의 일상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결정을 손 놓고 지켜봐야 한다”며 “EU로부터 해방되면서 실익까지 모두 챙기는 길은 없다”고 말했다.

영국이 EU를 떠난다고 해서 비용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하는 영국 싱크탱크 ‘오픈 유럽’은 영국이 현재 EU 규제로 인해 지불하는 비용은 약 333억 파운드(57조원)이며, 노르웨이 모델을 택할 경우 이 비용의 6%에 불과한 19억 파운드를 절약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EU 탈퇴는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달 28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글에서 “브렉시트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건 불확실성뿐”이라며 “브렉시트는 세기의 도박”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만약 영국이 EU를 성공적으로 탈퇴하는 전례를 마련한다면 다른 EU국가에서도 탈퇴 여론이 거세질 위험이 크다.

유력한 차기 탈퇴 후보로 거론되는 건 체코다.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는 지난달 23일 현지 언론에 “영국이 EU를 떠나면 체코에서도 수년 내 EU 탈퇴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그렇게 될 경우 체코의 정치·경제는 러시아 영향권으로 재편입되면서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뤘던 1989년 이전으로 퇴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0월 체코 현지 여론조사에선 체코인 62%가 “EU 잔류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탈퇴 쪽에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도 반EU 여론이 강하다. 지난달 21일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53%가 “EU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으며, EU 잔류를 찬성하는 국민은 44%로 반대(43%)와 비슷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2일 향후 EU 탈퇴가 예상되는 국가로 덴마크를 꼽았다. 덴마크 역시 반EU 정서가 강한 데다 영국처럼 자국 화폐를 유지하고 있어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국가보다 탈퇴가 수월하리라는 이유에서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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