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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3D스캐닝으로 입체물 출력…사라졌던 도자기의 용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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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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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295> 복원 문화재 대표작 7점 문화재 보존·복원은 낡고 병든 문화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수백 조각으로 깨진 도자기, 세월에 풍화돼 갈라진 그림을 닦고 매만져 원래의 모습을 찾아주는 작업이죠. 국립중앙박물관에 문화재 보존기술실이 생긴 건 1976년, 올해로 40년을 맞습니다. 다음달 8일까지 서울 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우리 문화재를 지키다’에 나온 문화재 중 대표작 7점을 소개합니다.


봉황모양 유리병(국보 제193호)
삼국시대(신라), 1973년 경주 황남대총 남분 주곽 출토
1984년(1차), 2014년(2차) 보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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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한 자태의 봉황모양 유리병이지만 처음 출토됐을 땐 480개의 조각으로 깨진 유리 더미였다. 조각들의 원위치를 찾아내 병 모양으로 완성하는 건 어려운 퍼즐찾기였다. 1차 보존처리 당시 에폭시(epoxy)계 수지 접착제를 이용해 유리를 이어붙이는 데 걸린 시간만 무려 6년. 국내 보존과학 1세대 전문가로 불리는 이상수(1946~98)씨가 주로 작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복원에 쓰인 접착제가 누렇게 변하고 접착력이 약해지면서 도자기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보존과학팀은 다시 한번 대수술에 돌입했다. 접착제를 녹여 도자기를 다시 조각조각 분리하고, 색깔 변화가 적은 아크릴계 수지를 사용해 다시 맞췄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황남대총 출토 유리 파편 가운데 봉황모양 유리병과 색상이나 기포 문양, 두께가 같은 조각 38개를 추가로 찾아내 군데군데 비어 있던 부분을 채워넣었다. 그 결과 병 높이는 24.8㎝에서 25㎝, 몸체 지름은 10.2㎝에서 9.7㎝, 무게는 307g에서 308.9g으로 바뀌었다. 유혜선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관은 “문화재 보존처리는 미래에 보다 발전된 기술로 다시 복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조사 구장복(銀條紗九章服 중요민속문화재 제66호)
조선,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
2011년(1차), 2015년(2차) 분석, 2015~2016년 보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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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복은 고려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왕과 황태자가 입었던 대례복 중 하나다. 옷에 용(龍), 산(山), 화(火), 화충(華蟲·꿩) 등 아홉개의 무늬 ‘구장문(九章文)’이 그려져 있어 구장복으로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구장복은 2점인데, 모두 조선 말기의 것이다. 통기성이 좋은 여름 옷감인 갑사(甲紗), 은조사(銀條紗)로 각각 만들어졌다.

문화재 보존처리는 우선 문화재에 빛을 쏘는 데서 시작한다. 적외선, 자외선, X선 등의 빛이 투과하면 그 문화재의 기본 재료가 무엇인지는 물론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그간의 변화과정도 드러난다. 2011년 구장복에 대한 1차 조사 당시에도 직물 종류, 무늬의 안료(물감) 성분 분석을 위해 X선 투과조사와 X선 형광분석법(XRF분석)이 이뤄졌다.

이 옷의 특징은 무늬를 수로 새기지 않고 안료를 이용해 그렸다는 점이다. 이관 당시에는 안료가 대부분 떨어져나가 그림의 원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옷감에 남은 안료의 성분을 분석해 황색금, 금동, 녹색석록, 적색주사, 백색은 등의 안료가 사용됐음을 밝혀냈다. 현미경 조사와 X선 투과로 사라진 용의 뿔과 눈·수염·발톱 등과 화충의 깃털, 호랑이와 원숭이 문양을 되살렸고, 당시 사용된 것과 최대한 가까운 안료를 사용해 채색했다.


용 구름무늬 주자(白磁透刻雲龍文注子)
중국 송나라, 1915년 경기도 개성 부근 출토. 2015년 보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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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용이 몸 전체를 휘감고 있는 이 화려한 주자는 이중 구조의 도자기다. 안쪽의 무늬 없는 도자기를 구멍이 숭숭 뚫린 투각(透刻) 기법의 외병이 감싸고 있는 형태다. 발굴 당시엔 손잡이와 물을 따르는 수구(水口)도 사라졌고, 용이 새겨진 외병은 절반 정도만 남아있었다. 당시 기술로 수구와 손잡이만 복원해 가까스로 주전자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외병에 있는 섬세한 구름과 용, 연꽃잎 문양까지 살려내는 것은 무리였다.

최근 보존과학에 적극 활용되기 시작한 3D 프린팅 기술이 주자의 원래 모습을 되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깥 병에 새겨진 전체 용무늬가 연속되는 형상이라 추정 복원이 가능했다. 우선 3차원 스캐닝으로 주자의 디지털 원형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사라진 부분을 모델링한 후 입체물을 출력해 복원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3차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복원법은 문화재의 디지털 원형을 기록해 무한 반복적인 생산 및 재가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문화재 복원에 널리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장점은 사람이 유물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형태를 만들 수 있어 문화재 훼손이 아주 적다는 것. 다만 표면의 색과 질감, 광택 조절을 위해서는 아직 수작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부처(石造佛坐像)
조선, 경기도 영남면 출토. 2006~2007년 보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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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등록됐다는 기록만 남아있을 뿐 명확한 입수경위는 알 수 없는 부처상이다. 복원 전엔 약 90여 개의 파편으로 부서진 채 보관돼 있었다. 조선시대의 불상은 대부분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불상은 커다란 돌을 파내 조각한 후 표면에 옻칠을 하고 금을 입혀 마무리한 특이한 형식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불상의 머리 부분이 깨지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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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에게 온전한 몸통을 찾아주는 일은 ①세척 ②접합 ③결실된 부분 복원 ④색맞춤의 과정으로 진행됐다. 보존처리 후 불상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전체 하중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무릎과 엉덩이 부분에 스테인리스 스틸봉을 삽입했다. 조각맞추기가 끝난 후에도 빈 채로 남은 부분을 채우기 위한 ‘돌 찾기’가 시작됐다. 편광현미경 관찰과 X선 회절분석을 거친 결과 불상의 재료는 불석(佛石·Zeolite)이었다. 이런 암석은 현재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구룡포읍, 경주시 감포읍 등에 분포하며, 화강암에 비해 무른 것이 특징. 지방에서 돌을 공수해 와 구멍난 부분을 메움으로서 불상의 몸통이 온전하게 완성됐다. ‘면봉’의 힘도 컸다. 작은 틈새의 이물질 등을 제거하는 데는 그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심희수 초상(沈喜壽肖像)
조선(17세기), 차종손댁 보존본, 1980년 청송 심씨 문중 기증
2007~2016년 보존처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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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수(1548-1622)는 15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도승지,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1980년 청송 심씨 문중에서 기증받은 이 초상화는 모두 비단에 채색한 그림으로 1613년 익사공신(翼社功臣·임해군 역모 사건 해결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려진 훈호)을 받은 시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기증받았을 땐 손상이 매우 심했다. 접혀 있던 부분의 물감이 대거 떨어져 나갔고, 비단과 뒤에 붙인 배접지(褙接紙)가 분리돼 들떠 있었으며, 그림이 전체적으로 갈색으로 변색돼있었다. 보존과학팀은 먼저 X선 투과조사, XRF분석, 현미경 촬영을 통해 그림에 사용된 재료 및 기법을 조사하고, 보존처리에 들어갔다. 서화(書?)의 경우 오염물을 제거하기 위한 세척이 매우 중요하다. 세척 방법에는 먼지 등 이물질을 부드러운 붓으로 털어내는 형식의 건식 세척과 중성의 여과수나 탈이온수를 사용해 그림 표면에 고착된 오염물을 씻어내는 습식 세척이 있다. 심희수 초상의 경우 비단을 떼어내 습식 세척을 했다. 떨어져 나간 비단 부분은 본견을 이용해 되살렸고 그 위에 채색을 했다. 채색안료로는 적색 주사와 녹색 녹염동광, 청색 석청, 황색 금, 흑색 먹을 사용했다.


발걸이
통일신라(추정), 1936년 황해도 평산군 산성리 출토. 1997년 보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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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탈 때 발을 놓을 수 있도록 안장에 매다는 게 발걸이다. 발굴 당시에는 이물질과 녹으로 표면이 덮여 있어 어떤 무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부식을 제거하고, 염화물을 없애는 탈염처리를 하고 나니 원래 갖고 있던 아름다운 문양이 드러났다. 면상감과 선상감 기법을 이용해 철제 바탕에 금·은 선으로 무늬를 넣고 안쪽 부분에도 은판을 덧댄 고급스런 발걸이였다. 금속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녹’은 중요한 변수다. 금속 유물에 쌓인 녹에는 ‘좋은 녹’과 ‘나쁜 녹’이 있다. 나쁜 녹은 유물의 부식을 촉진하지만 좋은 녹은 유물의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유물을 감싸 추가적인 부식을 막는다. 대표적으로 마그네타이트(Magnetite)가 있다. 초창기에는 보존처리 과정에서 표면의 부식물을 모두 제거해 깔끔하게 되살리는 경향이 컸지만, 최근에는 좋은 녹을 구분해 남겨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쪽이 훨씬 자연스러운 미감을 낸다.


칠초동검(漆鎖銅劍)
B.C.1~A.D.1세기, 1988년 경남 창원시 다호리 출토. 2008년 보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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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초동검은 검이 검집에 끼워진 상태로 출토됐다. X선 투과조사로 칼집의 내부구조와 동검의 결합상태를 확인한 후 칼집과 칼을 분리했다.

칼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지만, 칼집은 나무다. 두 개의 긴 나무 판자의 안쪽을 파내 검이 들어갈 공간을 만든 후 다시 합체시킨 형태였다. 칼집 색깔은 육안으론 매우 짙은 검은 색 흑칠로 보였지만, 분석 결과 옻에 연매(煙煤)를 섞어 3~4회 겹쳐 칠한 형식이었다. 목재 유물의 보존처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잘못 건조하면 목재가 틀어져 변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난파선 등에서 출토된 목재유물을 건조할 때는 무턱대고 말리는 게 아니라 바닷물과 비슷한 성분을 가진 물에 담가 그 안에서 유기물을 제거하고 천천히 말려야 한다. 이 과정에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칠초동검 칼집의 경우는 목재 내 수분을 고체 상태에서 기체 상태로 승화시켜 건조하는 진공동결건조법을 사용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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