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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비 남아도는데 보험료는 왜 올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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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생명보험회사들이 보험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업계와 소비자단체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생보사들은 올 들어 시중 금리가 연 4%대로 떨어졌으니 현재 연 5%대인 보험상품의 금리(예정이율)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정이율이 낮아지면 고객들은 만기에 같은 보험금을 받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예컨대 예정이율을 1%포인트 내리면 보험료는 15~20% 오르게 된다.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들은 보험사들이 고객들에게 사업비 명목으로 거두는 돈을 조금 줄이면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보험사들이 사업비로 지나치게 많은 돈을 거둬 자기 주머니를 불리고 있다는 게 소비자단체들의 시각이다.

◇사업비는 남고 이자는 밑져=생보사들은 고객이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 명목으로 돈을 떼어내 설계사 수당 등으로 쓰고 남는 돈(사업비 차익)을 이익으로 잡는다.

생보사는 또 보험료를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번 돈으로 고객들에게 이자로 주고 남는 돈(이자 차익)도 가져간다. 생보사들은 현재 사업비에서는 막대한 차익을 내고 있지만 이자 부문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다.

2002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의 경우 생보사들은 이자에서 2천억원대의 손해를 봤지만 사업비에서는 3조9천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에 따라 생보사들은 세금 등을 제하고도 사상 최대 규모인 2조8천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금융감독원은 올해도 생보업계가 2조원대의 이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비 성격 놓고 대립=소비자보호원.보험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들은 생보사의 사업비 차익을 줄이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도 이자 부문의 손해를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험업계는 사업비 차익이 실제보다 과장된 '허수'라는 입장이다. 사업비 차익이 많이 난 주력상품 종신보험의 경우 7년간 사용할 사업비를 초기 2년 동안만 받기 때문에 초기엔 흑자가 많이 나지만 나머지 5년간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보험사들이 실질적인 사업비 차익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며 "보험사 주장을 고려해도 사업비 차익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단체는 또 일부 보험사가 지난해 실적에 대해 올해 성과급을 지급한 점을 지적하면서 "사업비 차익이 허수라면 어떻게 성과급을 지급하느냐"고 따지고 있다.

금융연구원 정재욱 박사는 "보험사들이 이익은 자기 몫으로 챙기고, 손해만 고객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며 "보험료 인상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해 고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감원은 최근 일부 생보사가 새로운 사망률 통계를 반영한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보험료가 낮아지게 되자 사업비를 높게 계산해 보험료를 종전 수준으로 유지한 사실을 적발하고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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