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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진 “이세돌 보며 평정심 배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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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면서 평정심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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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진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지켜보며 평정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6일 용인 훈련장에서 손가락으로 농구공을 돌리는 하승진. [용인=김상선 기자]

16일 경기도 용인의 프로농구 전주 KCC 훈련장에서 만난 하승진(31)은 대뜸 이세돌(33) 9단 이야기를 꺼냈다. 이 9단은 전날 끝난 바둑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1승4패를 기록했다. 훈련 중 짬을 내서 대국을 지켜봤다는 하승진은 “알파고는 처음엔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바둑의 신’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9단이 지난 13일 제4국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승리를 거두는 걸 봤다.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훈련 틈틈이 알파고와 대국 시청
3패에도 흔들림 없는 모습에 감명

‘장신 센터’ 하승진도 코트 안팎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사투를 펼치고 있다. 상대팀은 2m21cm의 하승진을 막기 위해 거친 파울을 하기 다반사다. 하승진은 “경기 도중 상대 벤치에서 ‘하승진 무릎을 공략해 다치게 만들어’ 란 말까지 하는 걸 봤다” 며 씁쓸하게 웃었다.

일부 팬들은 하승진을 ‘유리몸’ ‘식물 인간’이라 부른다. 2008-09시즌과 2010-11시즌 KCC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하승진이지만 그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하승진은 “퇴행성 허리 디스크에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다. 양쪽 발목 인대가 거의 다 끊어지고, 굵은 인대 하나씩만 남아 있는 상태다. 진통제를 비타민처럼 먹으면서 뛰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하승진은 “살면서 큰 수술은 지난해 1월 코뼈를 다쳤을 때 딱 한 번 받았다. 그렇다면 ‘유리몸’이 아니라 ‘방탄유리’가 더 어울리지 않느냐” 고 말했다.

 올 시즌 하승진은 그의 말대로 방탄유리처럼 단단해졌다. 하승진은 “지난 시즌 제대한 뒤 스피드를 키우기 위해 150㎏이던 체중을 15㎏가량 뺐다. 그랬더니 골밑 몸싸움에서 밀리더라”며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서장훈(42·은퇴) 형이 ‘농구는 유도나 복싱 등 투기종목처럼 체급이 없다. 골밑싸움에서 이기려면 잘 먹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줬다. 그래서 올해는 145~150㎏의 정도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KCC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끈 하승진은 인삼공사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4경기 연속 더블-더블(평균 15점·14리바운드)을 기록했다. 팬들은 ‘하킬’ 의 부활을 반겼다. 하킬은 하승진과 미국프로농구(NBA) 공룡센터 섀킬 오닐(44·미국·2m16cm)의 합성어다. 하승진은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m98cm였던 나는 오닐을 보면서 농구선수 꿈을 키웠다. 2005년 NBA 포틀랜드에서 뛸 때 마이애미 소속의 오닐이 뛰는 걸 직접 봤다. 위압감이 엄청났다. 내게 ‘하킬’이란 별명은 과분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KCC는 19일부터 고양 오리온과 챔피언 결정전(7전4승제)을 치른다. 하승진은 KCC에서 2차례 우승을 함께 했던 추승균(42) 감독, 전태풍(36)과 함께 영광의 재현을 꿈꾼다. 그는 “요즘 KCC는 어떤 팀과 맞붙어도 질 것 같지 않다”면서도 “포워드가 강한 오리온과는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2년 결혼한 하승진은 “농구의 전반과 후반전처럼 나 역시 결혼 전과 후로 달라졌다. 네살 난 아들 지훈이가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인데 ‘농구는 하기 싫다’ 고 하더라. 아빠가 코트에서 넘어지고 다치는걸 봐서 그런가 보다. 집에서 나올 때 아들이 ‘아빠 다치지마!’라고 말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용인=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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