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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2세대 폐암 표적치료제, 내성?부작용 적고 항암효과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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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폐암을 선고받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암 전문병원 설립을 지시했다. 그렇게 삼성서울병원이 생겼고, 자연스레 폐암 치료는 가장 주력하는 연구 과제가 됐다. 선택과 집중은 놀라웠다.

[인터뷰] 폐암 명의 박근칠 삼성서울병원 교수

1990년대 말까지 국제무대에서 존재감도 없었던 이 병원은 이제 전 세계 폐암 전문가라면 누구나 주목하는 연구·치료기관이 됐다. 폐암 3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을 미국의 두 배 수준인 26.5%로 끌어올렸고, 1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1%로 세계 표준보다 높다. 그 중심에는 한 연구자의 집념이 있었다. 혈액종양내과 박근칠(60) 교수다.

최근 그가 새로운 폐암 치료제에 대한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1세대를 뛰어넘는 2세대 표적치료제의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연구 결과다.

-‘폐암=죽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실제 사망 환자 수도 10여 년째 부동의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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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이유는 일찍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폐는 심장 등 다른 장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X선으로 정기 검진해 봤자 1~2기의 작은 암세포는 못 잡아낸다. X선으로 폐암이 진단됐을 때는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다.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도 말기에야 나타난다. 다른 암에 비해 진행 속도도 빠르다. 자궁경부암이나 간암처럼 예방백신도 없고, 위암·대장암처럼 내시경으로 정기 검진할 수도 없다.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치료제 개발 현황은 어떤가.

“폐암세포만 공격하는 약은 2000년대 초반에 나왔다. 1세대 표적치료제는 이레사(성분명 게피티닙)이다. 폐암세포가 증식하도록 명령하는 수용체(EGFR)에 붙어 신호전달을 막는다. 암세포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기간을 기존 일반 항암화학치료제(6~8개월) 대비 3~5개월 연장하는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곧 내성 문제가 대두됐다. 약 성분이 수용체에 계속 붙어 있지 않고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성질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신호전달 억제 효과가 떨어졌다.”

-최근 개발된 치료제는 내성을 극복했다던데.

“그렇다. 기존 치료제가 EGFR수용체 1개만 차단하는 것에 비해 최근 개발된 2세대 치료제인 지오트립(성분명 아파티닙)은 종양세포의 성장·전이·대사 경로를 광범위하게 차단한다. 암 세포 억제 능력도 더 강하고 수용체의 결합력도 단단하다. 그래서 암 세포가 약물에 적응해 더 이상 치료 효과가 유지되지 않는 시기(내성이 나타남)까지의 기간을 연장시킨다. 1세대 표적 항암제는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나타나 질환이 재발했는데, 2세대 표적항암제는 환자들의 좋아진 상태를 최대한 연장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진행한 연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달라.

“2세대 폐암 표적항암제인 지오트립과 1세대 표적항암제인 이레사를 직접 1대 1로 비교했다. 결과, 환자의 종양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질환이 개선된 상태로 유지되는 기간, 그리고 치료제가 더 이상 듣지 않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치료 실패까지의 기간)이 기존 치료제 대비 27% 늘어났다. 기존 1세대 표적 항암제와 직접 비교한 연구 결과라는 점에서, 진화한 2세대 표적 항암제의 면모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금까지 치료제를 직접 비교한 객관적 연구가 없었다. 이번 임상 결과를 통해 EGFR 변이가 있는 폐암 환자의 항암제 선택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향후 의료진이 폐암 환자에 대해 항암제를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폐암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을까.

“금연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게 최고다. 폐암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90%가 흡연이다. 독성물질이 폐세포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한다. 간접 흡연도 주의해야 한다. 여성은 특히 폐가 약해 똑같은 환경에서도 더 주의해야 한다. 그밖에 요리 중 나오는 연기,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석면·비소입자 흡입 등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

-저선량 CT를 찍는 게 도움이 되나.

“방사선 피폭량을 일반 CT의 10분의 1로 줄인 저선량CT는 X선으로는 보지 못하는 3㎜ 미만의 작은 암세포도 찾아낸다. 하지만 적은 양이라도 방사선 노출 우려가 있고, 가격이 비싸 젊은 나이 때부터 매년 찍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55세 이상이면서 흡연 경력이 30년이 넘는 사람은 고위험군이므로 저선량CT를 찍어보는 게 좋다. 현재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금연 후 1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역시 고위험군이다. 2년에 한 번 정도 찍으면 된다. 고위험군이 아니라도 55세 이상에서는 5년에 한 번씩 찍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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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칠 교수는

1981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4년 삼성서울병원 개원 때 합류했다. 2005년 세계폐암학회 학술위원장으로 선출됐고, 국내 유일 국제 폐암연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삼성서울병원 폐암센터장을 지냈으며, 현재 암병원 암의학연구소장이다. 그는 암치료제를 만드는 글로벌 제약회사가 가장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임상연구자이기도 하다.

2세대 폐암표적치료제란

기존 1차표적항암제 대비 내성·부작용을 줄이고 항암 능력을 향상시킨 치료제. 베링거인겔하임에서 2012년 출시했으며 국내에서는 2014년부터 처방되기 시작했다. 보험 급여가 적용돼 환자는 약가의 5%만 내면 된다. 한달 기준 약 6만 8천원의 비용이 든다.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장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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