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시대의 건축가들은 예술가처럼 작업했다. 그들의 화두는 창조였다. 우리는 그들의 건축을 ‘작품’이라 부르면서 형태 창조자(form giver)로 대접했다. 특히 20세기 거장들을 조물주(architect)의 지위에까지 올려놓기도 했다.
후배 건축가들은 거장들을 롤 모델로 삼았다. 건축의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 즉 시각언어, 재료와 공법, 디테일 등에서 다른 이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것을 고안해내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자기 건축의 아이덴티티 로 삼는 일에 골몰했다. 건물의 모양만 보아도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를 알 수 있어야 비로소 건축가의 반열에 들었다고 여겼다. 어떤 가치보다 창조가 앞섰다.
지난달 말 『건축가 이종호』(metta/우리북)가 출간됐다. 2년 전 우리 곁을 황망하게 떠난 이종호(1957~2014)의 작품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디자인된 형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예술가이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마치 인문학자처럼 작업했던 한 건축가를 만난다. 그에게는 정치·경제·사회, 문화 및 예술, 그리고 과학, 심지어 잡기까지 인간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건축이었다. 그는 형태의 독자성이나 일관성보다 오히려 기능에 따라 달라지고, 건축이 자리 잡은 장소에 따라 달라지며, 특히 거기에 살게 될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달라지기를 바랐다.
그의 작업은 건물 주변의 자연적 환경과 인문적 환경을 살피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어 그 결과를 조합하고 재편집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고 한다. 특히 건축을 매개로 형성되는, 또는 형성되기를 바라는 사회적 관계에 집중한다.
강원도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이종호가 박수근(1914~65)의 그림보다 정작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은 생전의 박수근이 일상생활에서 보아왔던 고향 풍경이다. 이종호는 이 특별한 풍경을 통해 방문객과 박수근이 만나기를 바랐다. 해서, 건축은 그 풍경을 특별하게 경험하는 장치일 따름이다.
또 이종호는 같이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어 보이는 문화기획자 강준혁, 김덕수 사물놀이패, 그리고 건축 설계 집단 메타를 ‘메타사옥’(서울 동숭동)에 불러들였다. 그들이 건축을 매개로 특별한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도록 추동했다. 지금 그들은 여기를 떠났지만 그 유대는 아직도 견고하게 지속되고 있다.
유작이 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은 무심하게 널브러져 있던 나무, 조형물, 집들의 관계망을 바닥에 새겨 넣은 판들의 조직이다. 이종호는 이 판 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벤트가 자율적인 독자성을 가지고 서로 적극적으로 상관하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이종호는 건축을 매개로 한 행복한 관계를 추구했다. 또 이를 통해 한 차원 높은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려)했다. 그가 사유했던 인문학적 건축이 오히려 더 건축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 아닐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 그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민현식 건축가·건축사사무소 기오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