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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⑤ 런던 펍 기행 2 - 셰익스피어가 사랑한 에일아 어딨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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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펍에서는 나무통에서 숙성한 에일을 맛볼 수 있다.

영국은 에일(Ale) 맥주의 나라다. 한국을 비롯해 독일, 체코 등 전 세계에서 즐겨 마시는 맥주는 라거(Lager)이지만, 영국인들은 유서 깊은 에일 맥주를 마신다.

“맘 편히 에일 맥주 한 잔을 즐길 수 있다면 모든 명예를 내려놔도 아깝지 않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 대책 없는 맥주 애호가, 셰익스피어가 사랑한 에일은 대체 어떤 맛일까? 그가 에일을 벗 삼아 집필 작업을 했던 조지 인(The George Inn)에 가면 맛볼 수 있을까? 주워 듣기로는 영국 펍에서만 파는 맥주도 있단다. 한데 맥주 이름이 도통 외워지지 않았다. 에일 맥주는 종류는 많고 이름은 비슷해서였다.

대영박물관 앞에 있는 펍 뮤지엄 터번. 바텐더와 단골 손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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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다음 중 오직 영국의 펍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는?
1. 페일 에일 2. 인디언 페일 에일(IPA) 3. 캐스크 컨디션드 에일 4. 비터 에일 5. 마일드 에일

정답은 3번. 나무통에서 숙성시키는 캐스크 컨디션드 에일(Cask Conditioned Ale)이다. 양조장에서 만든 에일을 여과하거나 살균하지 않고 나무통 ‘캐스크’에 담아 펍에 보내면, 그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 부드러운 천연 탄산을 품은 맥주가 된다. 예부터 영국의 펍에선 1·2·4·5번처럼 다양한 맛의 에일을 ‘캐스크 컨디션’ 형태로 팔았다. 캐스크가 영국의 정통 맥주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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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펍에선 ‘셜록’과 ‘왓슨’ 에일을 판다.

참고로, 한국에서 마시는 라거 생맥주는 스테인리스 통에 맥주를 담은 뒤 탄산을 인위적으로 주입한 케그(Keg) 형태다. 케그는 캐스크보다 운송·관리가 쉬워 빠르게 보급됐다. 영국에서마저 캐스크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영국에서 에일을 부활시킨 것은 에일 애호가 단체, 캄라(CAMRA, Campaign for Real Ale)다. 이들은 ’진짜 에일을 펍에서 마시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우수한 에일을 판매하는 펍에 ‘캐스크 마크(Cask Marque)’를 달아주고, 전용 잔을 보급하는 등의 노력으로 캠페인을 성공시켰다.

어둠이 내려앉은 셜록 홈즈 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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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본드 거리에 있는 펍 ‘램 & 플래그(Lam & Flag)’에 갔을 때다. 메뉴판이 따로 없었다. 바에는 탭(Tap, 생맥주 기계에 달린 손잡이)이 여러 개였고, 탭마다 브랜드 로고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들뜬 맘으로 바텐더에게 캐스크 컨디션 에일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앞에 보이는 탭 전부라 했다. 아뿔싸. 트래펄가 광장 한가운데서 트래펄가 광장이 어디냐고 물은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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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맞은편 ‘뮤지엄 터번’은 에일 맥주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유서 깊은 펍이다.

애써 민망함을 감추며 페일 에일과 IPA를 한 잔씩 주문했다. 첫 맛은 다소 미지근했다. 평소 마시던 라거 생맥주보다 온도가 높고 탄산이 적어서였다. 갸우뚱거리며 두세 모금 더 마시다 보니 향긋하고 쌉살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쌀쌀한 2월, 누군가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기엔 그만이었다.

여러 펍을 드나들며 터득한 런던식 에일 즐기는 법은 이렇다. 이왕이면 바에 앉아, 탭 위의 맥주 로고부터 읽을 것. 와인 라벨처럼 맥주 이름, 양조장, 알코올 도수 등 정보가 다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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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에 잘 어울리는 영국 국민 안주, 피시 앤 칩스 .

페일 에일은 영국 대표 에일이다. 맥주의 주 재료인 몰트와 홉의 비중이 비슷하며 엶은 갈색을 띤다. IPA는 인디언 페일 에일의 준말로 과거 영국에서 인도까지 맥주를 수출할 때, 산패 방지를 위해 홉 비중을 늘린 게 시초다. 페일 에일보다 홉 향이 강하고, 씁쓸한 맛이 도드라진다.

무슨 맥주를 마실지 결정하기 어렵다면, 시음을 부탁해도 된다. 혹은 ‘셜록 홈즈 펍’의 ‘셜록’, ‘조지 인’의 ‘조지 인’처럼 그 펍에만 있는 메뉴부터 맛봐도 좋다. 런던 펍의 맥주 잔은 기본이 파인트(568㎖)이지만, 절반 크기도 주문할 수 있다. 안주는 시켜도 그만 안 시켜도 그만이다. 사람 숫자만큼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하는 이는 99% 여행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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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펍에는 마감을 알리는 종이 걸려있다.

런던에서 펍을 즐기는 방법 또 한가지. 맥주를 마시며 바텐더나 눈이 마주치는 손님과 대화를 나눠보자. 미처 몰랐던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대영박물관 앞 ‘뮤지엄 터번(Museun Tavern)’의 바텐더가 들려준 황금 종(바에 걸려 있는 종)의 정체도 흥미로웠다.

“보통 11시에 문을 닫는데, 마감 15분 전에 종을 쳐요.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는 얘기죠. 종을 한 번 더 치면 그땐 문을 닫는다는 뜻이에요.”
“오, 런던의 펍은 종을 두 번 울리는군요.”
“네, 잊지 마세요. 첫 번째 종이 울리면 마지막 잔을 주문해야 해요.”

다시 런던에 오면 땡땡 종이 울리는 시간까지 펍에서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했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오후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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