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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마이너스 금리는 만병통치약이 아닌 극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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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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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제로금리와 양적완화에 이어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예금할 때 이자를 지급하기는커녕 수수료를 내도록 강제하는 게 마이너스 금리다. 그러니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가계가 더 소비할 거라는 게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국가들의 기대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실물경제로 흘러 들어가지 않자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해보겠다고 꺼내든 마지막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덴마크 등 이어 EU·일본도 시작
자산 거품, 주가 하락 역효과 초래
한국도 금리 인하 주장 나오지만
외국인 이탈 등 부작용 우려돼

 현재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나라가 다섯인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덴마크와 스위스·스웨덴은 자국 통화가치가 과도하게 절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했다. 반면 유로존과 일본은 실물경기 진작과 디플레이션 방어 목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재정 확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여전히 경기 부진과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마지막 카드인 마이너스 금리를 빼든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부작용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환율 방어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스웨덴의 부동산 가격은 2015년 25% 급등하고 가계부채도 7%나 증가했으며 덴마크 일부 지역에서는 아파트 가격이 2012년보다 40~60%나 폭등했다. 유로존은 마이너스 금리로 풀린 돈이 투자나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돈맥경화’ 증상에 시달리고 있으며 최근 마이너스 금리 대열에 합류한 일본에서는 예상과 달리 불안심리가 퍼지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금융시장이 예상과 전혀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징조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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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금융시장에 끼치는 부작용도 상당하다. 미국은 돈줄을 죄는 반면 유로존과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까지 돈줄을 더 풀고 있는데, 이런 상반된 정책은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풀린 돈이 신흥국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휘저으며 금융 불안을 키우고 신흥국의 경기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 하나, 마이너스 금리 자체에 내재돼 있는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예금에 수수료를 물릴 경우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예대마진이 줄어들면서 은행권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보상받기 위해 은행은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을 줄이거나 고위험 투자에 뛰어들 수 있으며 의도치 않게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위축되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돈이 피라면 금융기관은 돈이 돌게 하는 혈관인데 마이너스 금리는 피(돈)를 더 많이 공급하겠다고 펌프질하면서도 혈관(금융기관)을 오히려 수축시키는 모순된 정책이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마이너스 금리를 시도하지 않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렇게 한계가 분명한데도 세계 주요국은 점점 더 마이너스 금리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10일 유럽중앙은행을 필두로 15일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더 내릴 듯하고 미국도 16일 논의에 돌입하면서 ‘마이너스 금리’라는 광기(狂氣)가 절정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국제금융시장이 점점 더 불안정해질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최근 주요국의 마이너스 금리 퍼레이드에 맞춰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의 부작용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망각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지금처럼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는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더라도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크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갈 우려가 커지고 그만큼 환율이 과도하게 급등하면서 실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원리금 상환부담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좀비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면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는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더라도 투자와 소비를 자극하는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2014~2015년에는 저금리와 주택시장 활성화 대책이 맞물리면서 건설경기에 다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나 최근 들어 주택시장의 공급과잉 우려가 커지고 여신심사가 강화되면서 이 경로도 막혀버렸다.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큰 만큼 지금은 기준금리 추가 인하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금융 불안을 잠재워야 경기 회복도 가능한 만큼 금융안정을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을 때다.

 물론 경기활성화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지금처럼 유효수요 부족 때문에 경기가 부진할 때는 유효수요를 늘려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투자활성화 대책, 가계소득을 높이고 지갑을 열게 만들며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소비활성화 대책,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신시장·신상품을 개척하는 수출 확대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어떠한 외부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외환 안전망을 구축하고 즉각적인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