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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부자들의 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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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31면

한국과 홍콩은 한 때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四小龍)’으로 불리던 네 나라에 속해 있었다. 그런 만큼 국제적 시각으로 볼 때 작지만 단단한 경제 구조를 자랑하는 공통점을 가졌다. 한국이 홍콩에 비해 땅도 넓고 인구도 많다.하지만 국민총생산(GNP)은 홍콩이 1만 달러 더 높다. 지금의 홍콩은 중국령이지만 정치 및 경제 체제는 여전히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고 있다. 한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과 홍콩이 가진 여러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측면이 하나 있다. 곧 부의 재분배 문제다. 홍콩의 부자들은 재산의 기부와 사회 환원에 적극적이다. 그와 같은 풍토와 더불어 주거 및 교육 등 거의 모든 부문에 국가복지제도가 시행된다. 그 선두에 홍콩의 가장 큰 부호 리카싱(李嘉誠) 회장이 있다. 아시아에서 최고,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다. 그의 개인 재산은 3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탁소 직원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부를 이룬, 자수성가의 대표적 범례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5만 원 이하 값싼 구두를 신고 10만 원 이하 값의 양복을 입는다. 비행기는 꼭 이코노미 좌석을 고집할 만큼 검소하다. 그 것뿐이라면 그냥 소문난 구두쇠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 제일의 기부자다. 해마다 그가 내놓는 장학금은 3000억 원이 넘는다. 그것도 회사 명의로 된 돈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낸다는 것이 세상의 여느 부호들과 다른 점이다. 특히 한국의 부자, 재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세계의 억만장자 가운데는 스스로 소박하게 살면서 천문학적 숫자의 기부를 아끼지 않는 부자들이 참 많다.


화려한 대 저택이나 전용 비행기를 마다하고 검소한 삶과 공익 기부를 경제생활의 지침으로 하는 이들의 면모를 미국의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최근 구체적 실례와 함께 소개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부자가 되기 전 1958년 3800여만 원에 구입한 집에 아직도 살고 있다. 그는 자기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지난해에만 3조5000억 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사회에 환원했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옷장에는 회색 반소매 티셔츠 9벌과 진회색 후드티 6벌이 전부다.겨우 3700만 원짜리 차를 탄다.


세계에서 두 번째 부자로 알려진 패션 브랜드 ‘자라’의 창업자, 스페인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매일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미국 케이블 방송 ‘디시네트워크’의 찰리 어겐 회장은 매일 점심을 샌드위치 도시락으로 때운다. 검소한 만큼 나누기를 즐겨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칭송의 대상을 넘어서 하나의 인간승리다. 부를 이루기는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축적된 부를 인생의 굴레로 만들지 않고 선하게 사용하며 베풀 줄 아는 자기 금도(襟度)를 지키는 일이다. 한국의 부자들, 그리고 재벌 기업들은 검소하지도 않거니와 기부에 인색하다.


물론 경제적 공익 개념을 앞세우고 재산을 대물림하지 않는 모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큰 기업들이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심지어 여론에 몰렸을 때 사회에 내놓겠다고 한 환원 약속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여럿이다. 부와 권력을 함께 가졌던 사회지도층에서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부호 모두가 당대에 일어선 재산가라면, 오늘날 한국의 경우는 대다수가 상속자다. 그 부는 불합리한 사회제도에서 말미암은 바 크다. 제도든, 생각이든 하나는 바뀌어야 한다. 이대로는 늘 부끄러운 부자들, 늘 억울한 서민들의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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