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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도 핵쓰면 망하는 줄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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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황장엽(黃長燁)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4일 '김정일 제거'를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탈북자 및 북한 인권문제 토론회'에서 金위원장을 강력히 비난하며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이날 토론회는 黃전비서가 1997년 한국으로 귀순한 후 열린 첫 공개토론회다. 미국 방문이 성사단계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그가 앞으로 대외활동을 활발히 펼치겠다는 의사 표시라는 해석도 나온다. 토론회장에는 국내외 언론사에서 8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북한 2인자는 장성택"= 연이어 터지는 취재진의 플래시 속에서 黃전비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김정일은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핵무기를 갖고도 이판사판 해볼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김정일 독재가 주민 3백만명 이상을 굶어죽게 만들었고 수십만 주민이 국경을 넘어 사경에 처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북한의 인권유린 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하고 '악의 축'으로서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黃전비서는 이날 북한의 후계 구도에 대해 "김정일 체제가 무너질 경우 다음 지도자로는 김정남.김정운 같은 애들이 아니라 장성택(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 유력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장성택의 큰형(장성우)이 수도방위를 맡는 3군단장이고 작은 형도 군단장급인 데다 노동당 조직 지도부 1부부장으로 조직도 잘 알기 때문"이라며 "장성택은 지금 사실상 북한의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전쟁 못해"=黃전비서는 이날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밤낮 서울에 미군이 있는 한 전쟁을 못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쟁하면 부산까지 밀고 나갈 수 있지만 그 다음이 문제고 미국이 있는 한 안 된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동시에 "지금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최근 북한 핵 문제와 관련, "북한의 사정이 이런 만큼 북한의 인권문제와 함께 핵무기 가진 것을 내세워 압박전술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黃전비서는 또 "북한에 핵무기가 몇개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쓰자마자 망하는데 어떻게 쓰느냐"고 말했다.

◆"경제원조 안돼"=두시간으로 예정된 토론회가 한시간 가까이 초과했지만 토론회 열기는 뜨거웠다. 토론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黃전비서에게서 피곤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토론회 말미에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적인 원조는 하지 말아야 한다"며 "상호(相互)주의 원칙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면 김정일이 농지개혁하지 않고는 못 살 것"이라며 "자꾸 주변에서 거저 주니까 자신이 위대해 외교를 잘해 먹여 살린다고 선전하지 않느냐"고 했다.

黃전비서는 또 "김일성은 스탈린주의자였지만 김정일은 스탈린식 제국주의 독재에 가부장적 전제주의를 결합시킨 독재정권을 만들었으며 북한의 절대주의 독재는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이 수립한 것"이라며 김일성 부자의 차별성도 강조했다.

이날 黃전비서의 토론회 발언을 놓고 일부 북한 전문가와 진보적 성향의 정치권 인사들은 "黃씨가 망명자의 입장이고 귀순한 지도 6년이 된 만큼 진술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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