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택위탁집배원도 근로자" 첫 판결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재택위탁집배원도 근로자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정창근)는 우체국 재택위탁집배원 유아(47ㆍ여)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씨 등은 대한민국 우정사업본부 소속의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근로자지위가 인정됨 전제로 유씨 등이 청구한 ‘1만원’의 연차휴가수당 청구에 대해서도 원고 승소 판결했다.

우정사업본부와 '위탁계약'을 맺고 배달 물량에 따라 수수료를 받아 온 재택위탁집배원이 우정사업본부의 지휘ㆍ감독에 따라 일하는 근로자인지, 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자영업자인지를 다툰 소송이었다.

위탁집배원은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 정부가 공무원이던 집배원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업무성격에 따라 상시위탁집배원과 특수지위탁집배원 그리고 재택위탁집배원으로 구분됐다.

우정사업본부는 그동안 우체국으로 일정한 시각에 출근해 일하는 상시위탁집배원과 특수지위탁집배원은 근로자로 인정해왔지만 우체국으로 출근하지 않고 상시위탁집배원으로부터 우편물을 넘겨받아 배달하는 재택위탁집배원은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2013년 위장 도급 논란이 일자 우정사업본부는 시급으로 책정되던 수수료(2013년 기준. 1시간 5300원)를 2014년 세대수 기준(2014년 기준. 250세대 5460원)으로 전환했다. 시간급은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계약의 형식과는 상관없이 근로의 실질적 성격에 따라 재택위탁집배원도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재택위탁집배원의 우편물 배달 방법과 절차는 상시위탁집배원이나 특수지위탁집배원과 동일하고 ▲배달 거부나 지연을 계약해지 사유로 삼는 것은 실질적으로 징계해고나 다름 없는데다 ▲우편물을 잃어버리거나 훼손하면 손배배상책임을 지는 것 등도 다른 위탁집배원들의 ‘근로계약’ 내용과 동일해 이들과 달리 취급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택위탁집배원들도 매일 6시 전후까지 배달업무를 끝내고 우체국으로 돌아와 수취인 부재 등을 이유로 배달하지 못한 우편물들을 정리하는 등 마무리 작업을 해야해 업무시간이나 업무량에 대해 재량권이 없고, 업무방식은 우체국의 업무교육을 통해 지시를 받아 온 점 등도 근로자임을 보여주는 사실관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재택위탁집배원은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받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우정사업본부를 위해 배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에 따라 2014년 원고들에게 지급됐어야 할 연차휴가수당은 46~54만원”이라며 “국가는 그 중 일부로 청구한 1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첫 판결에 따라 근로자지위확인과 연차휴가수당 전액 지급을 구하는 재택위탁집배원들의 청구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임장혁 기자ㆍ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