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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드러낸 중력파, 아인슈타인 마지막 수수께끼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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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존재한다고 예견한 중력파(重力波·gravitational wave)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우주 형성 정보 담긴 파장
미 국립과학재단 “작년 9월 포착”
더 정밀한 천체 관측 새 지평 열려
블랙홀 비밀 밝히는 열쇠 될 듯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12일 0시30분(한국시간) 미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확인된 중력파는 지난해 9월 14일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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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F는 “블랙홀 2개가 짝을 이뤄 자전하면서 하나의 무거운 블랙홀로 합병되는 과정에서 충돌 직전 발생한 중력파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중력파는 수면 위로 퍼지는 물결파에 비유된다.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거나 블랙홀이 만들어질 때 중력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중력의 파장을 뜻한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중력이 변하면 시공간도 함께 휘어지게 되며 이런 현상이 수면 위 파장처럼 우주 공간을 따라 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100년간 중력파를 추적했으나 그 실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과학자들은 중력파를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수수께끼’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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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SF는 이번에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천문대(LIGO·라이고)’를 활용해 중력파를 찾아냈다. 미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 인근에 설치된 라이고는 4㎞ 길이의 진공터널 2개로 만들어진 시설이다. 터널 끝에 거울을 붙여놓고 레이저를 쏴 공간 변화를 측정해 중력파를 검출했다.

강궁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은 “중력파 검출에 성공함에 따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마지막 검증 작업이 끝나게 됐다”고 말했다.

 중력파가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중력파는 거리에 비례해 신호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지구에 도달해서는 미약한 신호만 남아 발견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수억 광년 떨어진 블랙홀에서 발생한 중력파가 몸을 통과한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 몸은 수am(아토미터)가 늘어난다. 이는 수소 원자 크기의 수만 분의 일에 불과할 정도로 미세한 거리다.

이런 이유로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이후 철회한 사례도 있다.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는 2014년 3월 중력파를 탐지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데이터 해석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발표를 철회했다.

 ◆중력파 발견이 미칠 영향=이번 발견으로 당장 일상에서 큰 변화는 없다. 중력파 개념은 대학교에서 배우는 일반물리학 과정에 포함돼 있어 일반인들에겐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다만 천체물리학 분야에선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강 책임연구원은 “이번 중력파 발견으로 인류는 중력파 망원경이라는 새로운 관측 장비를 손에 넣게 됐다”며 “우주 관측 역사에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류가 현재 보유한 우주 관측 장비는 크게 빛을 활용하는 광학망원경과 전파를 이용하는 전파망원경 두 가지로 나뉜다. 60년 무렵부터 시작된 전파망원경 관측 덕분에 우주를 향한 인류의 지평이 크게 넓어졌다. 중·고등학교 과학책에 등장하는 빅뱅(Big Bang·대폭발) 이론이 대표적이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급팽창했다는 사실은 우주에서 온 전파를 관측해 발견했다. 수리과학연구소 오상훈 박사는 “중력파 관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빅뱅처럼 기존 인식을 뒤집는 관측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며 “이를 통해 인류의 우주 관측 지평이 수십 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력파는 초기 우주 형성과 ‘미스터리 천체’ 블랙홀의 비밀을 밝히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력파는 영화 속 유령처럼 모든 물질을 훑고 지나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빛처럼 반사되는 특성도 없어 왜곡 없이 전달된다.

이런 이유로 초기 우주 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력파는 방출 당시 정보를 온전히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상훈 박사는 “빅뱅 이후 초기 우주 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력파를 검출해 분석한다면 우주가 만들어진 원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이 내뿜는 중력파를 잡아낸다면 블랙홀 성장 과정의 비밀 등을 밝힐 수도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중력파(重力波·gravitational wave)=수명을 다한 별이 폭발하거나 블랙홀이 생성되는 등 우주에서 갑작스러운 중력 변화가 일어날 때 발생한다. 중력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시공간의 일그러짐이 빛의 속도로 우주 공간으로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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