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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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본선 16강전 2국> ○·장웨이제 9단 ●·김동호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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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보(187~204)=좌중앙으로 뛰어들어 꾸물꾸물 비집고 나간 88, 90, 92는 끝내기인데 뭔가 감춰진, 끈적끈적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당장은 아무런 수단도 없지만 대체로 이런 곳, 이런 수들이 대국자의 미묘한 감정변화와 결합해 대형사건(?)을 만들어낸다.

프로바둑의 고수란 고샅길을 연상시키는 이런 곳, 이런 수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들을 승부사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는 해도 장웨이제는 여전히 젊은 승부사다.

87이 선수라고 했으니 상대가 손을 뺄 수 없는 다른 급한 곳을 두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와야 한다. 96으로 하나 먹여치지만(섬세하다. 초읽기의 시간 연장의 수단이지만 차후 A로 끊는 팻감을 생각할 때 한 수의 가치가 있다) 결국, 98로 보강해야 한다.

반상최대의 곳, 좌상귀 99로 뛰어들어 흑의 승리는 더욱 뚜렷해졌다. 102로 막을 수밖에 없을 때 우하 쪽으로 달려와 틀어막은 103은 승리선언의 깃발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평범하게 마무리한다면 백은 더 이상 해볼 데가 없다. 중앙 104는 시간 연장을 겸한 응수타진. 우하귀에서 ‘참고도’ 백1, 흑2로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패라도 결행해야 하는 숙고에 필요한 시간을 벌겠다는 뜻인데….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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