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폰지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이정재 논설위원

사흘 전 중국 경찰은 중국 최대 P2P(개인 간 대출) 업체 ‘e쭈바오(e租寶)를 급습했다. 실소유주인 딩닝(丁寧) 위청그룹 회장과 임직원 21명을 구속했다. 죄목은 ‘폰지 사기(Ponzi scheme)’. 피해액 500억 위안(약 9조원)에 피해자만 줄잡아 90만 명. 중국 역사상 최대 사기극이다. 걸린 시간은 딱 1년.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핀테크를 활용해 가능했다.

다단계 금융 사기도 진화
핀테크와 결합 땐 큰 피해

다단계, 피라미드로 불리는 폰지 사기의 공식은 이렇다. ①존재하지 않는 첨단 고수익 사업을 들이댄다 ②처음엔 한두 명을 꼬드겨 투자금을 받아낸다 ③고수익에 꼬여 투자자들이 넘어온다. 피라미드가 거대해진다. ④더 이상 투자금을 모을 수 없게 되면 피라미드는 자체의 무게로 붕괴한다. (최초 투자자 2명으로 시작한 피라미드가 20계단을 내려오면 52만4288명이 필요하다.)

e쭈바오는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업으로 사람들을 낚았다. 연 14%의 고수익을 제시했다. 결국 더 이상 돌려막을 수 없어지자 붕괴했다.

폰지 사기는 금융 사기의 전설 찰스 폰지(1882~1949)의 이름에서 따왔다. 폰지가 다단계 금융 사기를 창안한 건 1920년. 40일에 원금의 50% 수익을 준다며 넉 달 만에 4억5000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투자 대상은 우편 쿠폰, 환차익을 미끼로 유혹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업이었지만 사람들은 넘어갔다. 피해자 1만7000여 명, 피해액 약 10억 달러.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극이었다.

폰지를 불후·불멸의 이름으로 만든 것은 폰지의 수제자, 버나드 메이도프다. 그는 프로 중 프로였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 출신답게 전문지식과 인맥을 절묘하게 활용했다. 1960년 장인에게 5만 달러를 빌려 증권회사를 차렸다. 2008년 탄로 날 때까지 48년간 사기를 쳤다. 피해액은 650억 달러, 피해자만 300만 명에 달했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인 ‘공포’와 ‘탐욕’을 이용하는 데 천재였다. ‘돈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보다 ‘돈을 못 맡길지 모른다’는 탐욕에 휩싸이게 했다. 투자자가 몸이 달아 찾아오도록 한 것이다. 아무나 받아주지 않았다. 플로리다의 부동산 재벌 바버라 폭스를 퇴짜놓은 것도 그런 전략이었다. 회원제로 운영하되 자선단체 기부를 약속해야 받아줬다. 회원이 되는 게 신분 상승이요 성공의 계단에 올라선 것처럼 느끼도록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뉴욕 메츠 구단주, 상·하원 의원, HSBC 같은 세계적 금융회사들까지 말려들었다. 미국 법원은 메이도프에게 15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다시는 그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기 바란다며.

그렇다고 사라질 폰지가 아니다. 우리 곁에도 널렸다. 이미 조희팔·이숨투자자문 같은 전례가 있다. 우리 앞에 닥친 고령화·저금리, 경제 불황은 폰지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다. 사라지긴커녕 더 극성을 부릴 것이다. 게다가 e쭈바오가 보여줬듯이 폰지 사기가 핀테크와 결합하면 피해는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있다. P2P 선발업체 8퍼센트의 이효진 대표는 “핀테크를 악용한 대형 사기극이 언제 터질까 불안하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그러나 최근 200여 곳으로 급속히 늘어난 P2P 회사를 제도 금융권에 편입시키지 않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P2P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가 희대의 사기극이 일어나면 몽땅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수방관이 답은 아니다. 창조금융도 하고 폰지 사기도 막아야 한다. 핀테크를 어떻게 안전하게 제도권 안에 끌어넣을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방향은 ‘규제는 풀되 처벌은 강하게’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다. 시장은 옥죄면서 처벌은 느슨하다.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이 만약 안 죽었고 잡힌다면 현행법상 최대 11년 징역형이 고작이라고 한다. 메이도프에게 왜 미국 법정이 150년을 구형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한번 대형 사고가 터진 뒤엔 늦다. 창조금융이고 핀테크고 한 방에 도루묵이 될 수 있다. 96년 전 막을 내렸지만, 폰지의 유령은 지금도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