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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파일] 100억원어치 필로폰 들여온 'A급 지게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필리핀에서 국내로 필로폰 1kg을 배낭에 숨겨 밀반입한 혐의(마약류 관리법 위반)로 송모(44)씨를 구속했다고 3일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마약 운반책인 송씨는 이미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2kg의 필로폰을 국내에 밀반입했습니다. 짐을 나눠서 담을 수 있게 만들어진 배낭 속 안쪽 칸에 필로폰을 넣고 입구를 꿰매는 방식으로 보안검색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두 번이나 성공했으니 세 번째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송씨는 지난달 12일 같은 방식으로 필로폰 1kg을 배낭에 숨긴 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다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필로폰 밀반입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하고 미리 공항에서 잠복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송씨가 필리핀에서 국내로 들여온 필로폰은 총 3kg에 달합니다. 필로폰의 경우 통상 1회에 0.3g씩 투약한다고 합니다. 송씨는 그간 세 차례에 걸쳐 총 10만명이 한꺼번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을 배낭에 숨겨 유유히 입국한 셈입니다. 이 정도 양이면 시가로 따져도 100억원에 달한다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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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붙잡힌 송씨의 배낭에 숨겨져 있던 필로폰 1kg.

이번 사건을 수사한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에서도 송씨를 현장에서 체포한 뒤 배낭에서 쏟아져 나오는 1kg의 필로폰을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필로폰 1kg을 매매·밀반입하는 현장을 포착하거나 범인을 검거할 경우 해당 경찰은 특진 명단에 포함됩니다. 그만큼 1kg씩이나 되는 다량의 필로폰을 운반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처벌의 수위도 높습니다. 마약범죄 처벌에 관한 양형기준에 따르면 필로폰 1kg을 매매·밀반입하려다 적발될 경우 징역 8~11년 형을 기본으로 최대 무기징역이 선고될 정도로 큰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송씨가 마약을 구해 온 필리핀의 경우에도 필로폰 50g 이상을 소지·밀반입한 경우 최대 사형에 2억5000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한다고 하니 차라리 한국에서 붙잡힌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송씨가 처음부터 마약 운반책으로 일해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송씨는 원래 필리핀으로 원정도박 오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카지노 알선 일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마닐라의 한 카지노 단골손님이었던 김모(56)씨의 부탁을 받고 마약 운반책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돈에 쪼들려 살던 중 필로폰 1회 운반에 최대 5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김씨의 꾀임에 넘어간 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송씨에게 유혹의 손길을 보낸 김씨는 부산에서 마약 매매상으로 활동하다 2008년 중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도주한 마약 밀반입 조직의 총책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달 12일 경찰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붙잡힌 송씨의 배낭에서 필로폰 찾아내는 모습]

소위 ‘지게꾼’이라고 불리는 마약 운반책의 경우 기존엔 현지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이나 전과자,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송씨는 전과가 없을 뿐 아니라 마닐라와 한국을 자주 오가며 공항의 보안검색 절차 등에 대해서까지 훤히 꿰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A급 지게꾼’이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송씨는 보안검색 절차를 진행하는 공항 직원들의 피로가 극에 달하는 새벽시간만을 노려 입국을 시도했습니다.

송씨를 붙잡긴 했지만 총책인 김씨가 여전히 필리핀에 몸을 숨기고 있는 만큼 ‘필로폰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송씨가 과거 두 차례에 걸쳐 밀반입한 2kg의 필로폰이 이미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경찰로서도 수사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경찰은 인터폴 및 필리핀 현지에 나가 있는 파견 경찰데스크와 공조해 총책 김씨를 검거하고 국내 마약 판매 조직원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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