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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토론] 대학 내 성희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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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학 내 성희롱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교수에 의한 성폭력.언어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제간이라는 특수한 구조 때문에 대부분 은폐되거나 무마돼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학에서 성희롱 교수를 감싸는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데 대해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비판적 토론을 가졌다.


왼쪽부터 홍은희 논설위원(사회), 손이레(서울대 수학4)씨, 김보람(연세대 상경계열4)씨, 조은 동국대(사회학)교수, 김선택 고려대(법학)교수. [김춘식 기자]

▶사회=요즘 각 대학에서 학내 성희롱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 실상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김보람=강의를 듣다보면 교수님들이 성과 관련한 농담을 자주 하시지요. 언어와 관련된 문제가 주로 벌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지나가는 말이어서 뭐라하기 힘들 때도 많아요.

▶손이레=대학 내 성희롱은 학부보다 대학원에서 심각합니다. 유형도 여러가지지요. 학과 홈페이지를 통해 익명으로 여성을 성희롱하거나 엠티(MT) 등 사적인 모임에서 성폭력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조은=남성교수 중심의 대학사회에서는 성희롱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기가 특히 힘듭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자체를 문제삼기도 해요. 심지어 과거엔 그냥 넘어간 일을 왜 문제 삼느냐는 시각도 있어요.

▶손=그 여학생은 (성희롱을)당해도 싸다는 거지요. 모 대학 총장님이 성희롱 사건을 두고 "피해자가 당할 만했다"고 말했던 것도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불공정한지 잘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사회=여학생들 사이에서 "어느 교수가 문제야" 또는 "나도 당했는데"라는 사적인 내밀한 정보를 어떻게 공유하나요.

▶김보람=참다 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문제를 어렵게 주위에 호소하는 게 대부분이지요. 여학생들끼리 모였다고 그런 민감한 얘기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조=우리 사회에서 교수님에 대한 얘기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교수직을 일종의 성역처럼 생각하지요.

▶사회=남학생들은 도와주나요.

▶손=교수님들이 여학생들에게 심각한 정도의 성희롱 농담을 해도 문제를 제기하는 남학생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성희롱당한 여학생을 도와주는 남학생은 더 적지요.

▶조=(성희롱을 당한)여학생들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한번 좌절하지요. 이런 사건을 보는 여교수들도 알면서 모른척 하는 일도 있으니까요.

▶사회=교수 사회의 담합인가요.

▶조=일종의 동류의식이지요. 여기엔 가뜩이나 들어가기 어려운 교수 사회인데 여성 교수가 잘못 나섰다가 동료 사회에서 왕따가 된다는 불안감도 작용합니다.

▶김선택=남녀차별 개선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대학 내 성희롱 사건을 많이 지켜봤습니다. 성희롱 문제는 사회 일반의 문제이지요.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타인에 대한 존중심이 낮고,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안타까운 일은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해 남성에 대한 성토만 있을 뿐 대책을 만들지 못하는 데 있어요. 제도적인 대책을 세워 해결해야지 형사처벌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요.

▶조=제도화는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대학사회에서 교수의 성희롱 문제가 왜 쉽게 해결되지 않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같은 교수의 문제라고 덮어주는 문화에다 교수가 교수라는 권력을 이용해 피해자를 역으로 고소하는 권력관계도 작용하는 겁니다.

▶손=남학생은 (동료 여학생의 성희롱)문제를 제기하고 빠져나가면 그만이지만 여학생은 또다시 피해자가 되지요. 우리 대학엔 성희롱상담소가 있어요. 성폭력 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거기서 해결이 잘 안됩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문제를 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 대해 "당해도 싸지", 또는 "불쌍하다"는 시각이 있어 피해자가 자신 있게 문제 제기할 수 없지요.

▶김보람=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대학이란 공동체를 깨뜨리는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요. 대학 사회의 폐쇄성도 문제를 키우는 한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선택=성희롱 문제를 놓고 남녀 대립구도로 파악해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요. 그리고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일종의 세대차라는 게 있지 않나요. 어떤 사람에겐 차 따르라고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성희롱당했다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이기도 한 상황에서 성희롱을 증명하기도 힘들지요.

▶조=세대차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지만 채증주의만 강조할 뿐 정황증거를 중시하지 않는 법체계는 문제예요.

▶손=성희롱은 당해본 피해자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보람=경찰 등 사법당국 역시 남성 위주다 보니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 관련 문제를 처리합니다.

▶김선택=성희롱 문제를 남녀 간의 권력관계로 해석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권력관계가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당장은 해결이 안되겠네요. 저는 지금이라도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을 만들자는 겁니다.

▶조=시스템이 중요하지요. 그보다 지금 시점에서 성희롱 사건이 터졌을 때 그걸 바르게 해결한다면 더 많은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김선택=쉽지 않은 일이네요.

▶손=쉬우냐 어려우냐의 문제가 아니지요. 대학이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지요.

▶김선택=대학도 반성해야지요. 대학은 지금껏 뭘 했나요. 교수를 채용할 때나 학생을 뽑았을 때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야지요. 엉뚱한 행동을 할 때 어떤 불이익을 보게 되는지, 피해 학생은 어떻게 이의제기할 수 있는지 교육해야 합니다.

▶조=교육보다 당장 외부로 터진 성희롱 사건부터 제대로 해결해야 하는 게 순서지요. 중.고교를 보세요. 성희롱 교사는 징계를 받아 타 학교로 전보조치됩니다만 대학교수는 붙박이 아닌가요.

▶김보람=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처리가 안돼요. 선례가 되지 못하는 겁니다.

▶조=모 대학에선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교수를 해임조치했는데 이에 반발한 교수의 제소로 교육부의 징계재심위원회가 정직으로 감면했지요. 이걸 본 다른 대학들은 성희롱 교수에게 어떻게 조치했을까요. 앞선 대학처럼 정직 조치를 했지요.

▶손=대학 내 성희롱 방지 교육프로그램보다 일단 터진 사건을 잘 해결해 주는 게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선택=성희롱은 차별의 문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차별 구조를 해소해야겠지만 성희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부적인 절차, 피해자의 신분 보장, 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야 피해자가 속출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조=대학이 성희롱 문제를 다루는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데 있어 최근의 사건들은 중요합니다. 대학이 이를 은폐하거나 가볍게 처리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발생된 사건에 대해 엄정하게 처리하며,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하는 시각이 아쉽습니다.

정리=강홍준 기자 <kanghj@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