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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없이 어떻게” “술은 내놓지 마라”…올랑드·로하니, 오찬 대신 맹물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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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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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술을 금기시하는 이란의 종교적 전통 때문에 국빈 방문임에도 공식 오찬이 잡히지 않았다. [파리 AP=뉴시스]

프랑스는 와인의 종주국이다. 정상 방문엔 의당 와인이 곁들여진다. 스스로 ‘공화국(프랑스 지칭)의 전통’이라고 말한다.

식사 시간 피해 물·주스만 마셔
이란, 에어버스 114대 구매계약

이란은 술을 금기시한다. 와인을 서구의 문화적 침략이라고 여긴다. 27일부터 사흘 일정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두고 양국 외교관들이 좁혀야 할 난제였다.

지난해 11월 로하니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란이 “공식 오찬에 와인이 제공돼선 안 된다”고 했다가 프랑스가 거절해 결국 오찬 일정이 취소됐던 전례가 있다.

결과적으론 이번에도 그 간격을 좁히진 못했다. 국빈 방문인데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의 공식 오찬이 잡히지 않았다. 같은 이견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대신 “조찬으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이란이 “볼품 없다(too cheap)”고 반대했다고 한다.

정상은 대신 식사를 피해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음료 리스트엔 “물과 과일 주스만 있다”(영국 더타임스)고 한다. 대신 나머지 일정은 국빈 방문에 준하게 치러졌다.

직전 순방에서 이탈리아는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의 누드 조각상을 흰 패널로 가리고 연회에서 와인을 빼는 ‘환대’를 하는 바람에 “돈 앞에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배신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반면 프랑스는 자존심을 지킨 셈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프랑스에서도 돈주머니를 풀었다. 유럽 항공기인 에어버스 114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200억 달러(24조원)를 넘는 규모다.

또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가 2017년부터 이란에서 매년 2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국영철도(SNCF)도 이란과의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을 향해서도 “이번 순방이 이란과 유럽 사이에 새로운 봄을 열었다”며 “미국 의회가 (이란에 대해) 긴장과 적대 관계를 끝낸다면 유럽과 같은 긍정적인 관계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열쇠는 테헤란이 아니라 워싱턴에 있다. 미국 투자자·재계 지도자들이 이란에 와서 투자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미국이 과거를 돌아보기보다 미래를 더 많이 내다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구 언론은 “로하니 대통령으로선 37년 만의 파리 방문이어서 개인적 소회도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글래스고 캘리도니언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로하니는 서른 살이던 1978년 프랑스로 건너가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혁명에 가담했다.

당시 호메이니는 파리 교외의 노플 르 샤토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듬해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고 2월 로하니는 호메이니와 함께 이란으로 귀국했고 정계에 투신했다.

한편 유럽의 항공사들이 이런 화해 무드에 따라 5년 만에 이란으로의 재취항을 서두르고 있다.

영국 브리티시항공 관계자들이 지난 26일 테헤란에서 항공편 재개를 논의한 데 이어 에어프랑스-KLM항공도 이란행 운항 준비를 마쳤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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