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영웅을 따라 남극 탐험 중 48킬로 남기고 숨진 영국 탐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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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웅인 어니스트 섀클턴은 1909년 1월 9일 아침 남극으로부터 156㎞ 지점에서 '이젠 더 어찌 못하겠다'고 했다. 슬프게도 나도 그렇다는 걸 알린다. 내 여정도 끝났다."

 22일 영국인 탐험가 헨리 워즐리(55)의 말이었다. 그는 어떤 지원도 없이 무동력·단독으로 남극 대륙을 횡단 중이었다. 목표했던 75일 중 70일째로 1609㎞ 중 1561㎞를 돌파했던 터였다. 단 48㎞만 남겨뒀었다.

그는 그러나 "시간도 지구력도 바닥났다"며 "신고 있는 스키를 밀 힘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많은 산악인들이 정상을 앞에 두고 실패한다. 내 정상도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며 "상처를 딛고 일어나겠다. 결국 치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이게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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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음날인 23일 남극 기지로 구조됐다. 당시만 해도 탈수와 영양실조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세균성 복막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고 칠레로 후송됐으나 결국 다음날 숨졌다.

그가 영웅이라고 한 섀클턴은 100년 전 로알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과 함께 남극 정복에 나섰던 탐험가였다. 결국 아문센이 최초 정복의 영예를 안았다. 섀클턴은 성공보단 '실패'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1914년 12월 27명의 대원을 이끌고 남극 대륙 횡단에 나섰으나 타고 있던 배가 난파했다. 죽음을 넘나든 악전고투 끝에 637일만에 대원 전원을 구해내는 기적을 이뤘다.

워슬리는 어릴 적부터 이들의 얘기를 즐겼다. 30여 년 군인이었던 그는 2009년에 100년 전 섀클턴의 남극 루트를 탐험했다. 2011년엔 스콧과 아문센의 남극 루트를 등반했다. 영국 BBC 방송은 “섀클턴과 아문센·스콧의 루트를 모두 등반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번 탐험은 1914년 섀클턴 루트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는 생전에 "숨질 수도 있다.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나를 이끄는 동인은 군인들을 위해 모금하겠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실제 상이군인을 위해 10만 파운드 모금이 목표였다.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해리 왕자가 관여하는 기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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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왕세손은 "나와 해리는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이어 "동료 군인들에 대한 사심 없이 헌신한 인물이었다. 엄청난 용기와 결단을 보여줬다. 그와 함께할 수 있어서 대단히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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