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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젊은이를 돕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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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30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지옥 같은 한국 사회를 지칭하는 표현인 모양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고, 유엔의 인간개발지수 기준으로 세계 15위인 한국이 지옥 같은 사회라니?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에는 너무 황당하고 솔직히 화도 났지만, 최근 젊은 세대들이 처한 참혹한 취업 여건을 돌이켜보면 또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5년 11월 기준 20대의 고용률은 58.4%로 절반이 약간 넘는 사람들만이 직장을 가지고 있다. 20대의 고용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젊은이들이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도 취직 시험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취직 시험에 매달리는 걸까. 그 첫 번째 이유는 대학 전공별 미스매치에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과 지금 직장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접점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4~2024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을 보면, 향후 10년간 경제·경영 전공 졸업자들은 12만 명이나 초과 공급되는 반면 기계금속 및 전기·전자 전공 졸업자들은 각각 7만8000명과 7만3000명이나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경영, 중등교육, 사회과학 등 초과 공급이 가장 심각한 전공을 선택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가 헬조선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본다.


한국 젊은이들이 어려움에 처한 두 번째 이유는 교육에 대한 과다 투자에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펴낸 책 『압축성장의 고고학』에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요약하면 1955∼1963년에 태어난 약 7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성장의 시기를 살아오면서 ‘학벌이 신분 상승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녀 세대들에게 아낌없이 교육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인 900만 에코 세대(1979~1992년생)는 사상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하게 됐다.


문제는 에코 세대가 대학에 입학했던 90년대 말이 한국 경제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역사상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세대가 사회에 나오는 순간, 저성장의 시대가 막을 올렸던 셈이다. 더 나아가, 90년대에 이뤄졌던 대대적인 정원 확대로 인해 대학 진학 학생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던 것도 대졸자들의 프리미엄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신들의 노후 대비를 위한 돈까지 모두 써가며 비싼 등록금 내고 자식들을 힘들게 공부시켜놨지만 교육 투자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개인들이 할 일은 분명하다. 자녀의 학업 능력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어떻게든 교육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 물론, 나도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최대한 공부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늙고 경제력 없는 부모 봉양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지우는 것보다는, 일단 내가 경제력을 갖추는 게 아이들을 장기적으로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두 가지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는 경기부양이다. 연 2%의 경제성장률 수준에 머물러선 에코 세대에게 충분히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저금리와 원화 가치 하락’의 정책조합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대학 학과별 입학정원의 조정을 통해 인력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를 시정하는 것이다. 교육개혁을 미룰수록 한국 최대의 인구집단인 베이비 붐세대와 에코 세대의 고통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조치에도 젊은 세대의 고통이 금방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어두운 시대를 조금이라도 단축하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홍춘욱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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