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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에디슨과 테슬라에 낀 한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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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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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논설위원

토머스 에디슨(1847~1931)과 니콜라 테슬라(1856~1943)는 초기 전기의 역사를 밝힌 발명가들이다. 에디슨은 백열전구의 발명가로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그는 전구를 발명하지 않고 개선했다. 알렉산드로 볼타가 전기를 발견한 이후 많은 발명가가 불빛을 내는 유리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쓸 만한 전구를 만든 이는 없었다.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해 값싸고 내구성 있는 전구를 만든 게 에디슨이다.

 에디슨이 이룬 더 큰 업적은 아마도 전력 시스템을 처음 구축한 일일 것이다. 1882년 9월 4일 뉴욕 맨해튼 남부에 있는 59채의 저택에 일제히 백열등이 켜졌다. 펄스트리트에 있는 발전소에서 만든 110V 직류 전기가 사상 처음으로 송전된 것이다. 인류를 밤의 제약에서 풀려나게 할 전기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여기엔 에디슨전기회사가 만든 백열전구뿐 아니라 발전기와 배전망이 사용됐다. 생산과 소비를 아우르는 전력 시스템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후 급속히 확산된 전기는 20세기 문명을 떠받치는 토대가 됐다. 역시 그가 발명한 영화와 축음기도 안정적인 전력망 덕분에 보편적인 레저 수단이 됐다.

 테슬라는 오랫동안 에디슨의 빛에 가려진 ‘미친 과학자’였다. 세르비아 태생인 그는 발명가이자 전기 및 기계공학자였고 물리학자, 미래학자이기도 했던 괴짜였다. 전선 없이 전구를 밝히는 무선 송전(送電) 기술을 탐구하며 사상 첫 무선조종 보트를 만들었다. 그가 시도한 고주파를 이용한 무선통신 실험은 X선이나 이동통신 기술의 발달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전기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도 테슬라의 역할은 컸다. 에디슨이 시작한 직류 시스템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송전 거리가 길수록 전력이 급속히 약해졌다. 이런 약점을 틈타 영국을 중심으로 보급되고 있던 교류 전기가 대안으로 급속히 떠올랐다. 위협을 느낀 에디슨은 1884년 파리 자회사에 있던 테슬라를 불러들여 직류발전기의 개선을 맡긴다. 하지만 테슬라는 교류발전기가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효율적인 교류발전기와 변압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직류를 고집하던 에디슨은 그를 냉대했다. 이에 실망해 에디슨전기회사를 떠난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에 관련 특허를 넘긴다. 이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가 교류 전기를 채용하면서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이 교류의 승리로 끝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에디슨이 세운 에디슨전기회사가 제너럴일렉트릭(GE)에 합병돼 사라진 것도 이 여파였다. 물론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았을 리는 만무하다. 에디슨은 테슬라를 겨냥해 ‘교류는 고압이어서 위험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를 위해 맨해튼으로 이어지는 다리 위에서 코끼리를 교류로 감전시켜 죽이는 퍼포먼스까지 감행했다. 테슬라 역시 극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기 몸에 직접 교류를 통과시키는 엽기 공연으로 반격했다.

 100년도 한참 더 된 일을 거론하는 건 두 사람의 존재감이 아직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에디슨전기회사의 후신인 GE는 최근 중국 하이얼에 가전부문을 매각했다. 20세기형 산업인 가전을 규모의 경제로 밀어붙일 수 있는 중국에 넘겨준 것이다. 테슬라는 21세기 괴짜 백만장자인 일론 머스크에 의해 첨단 전기차 회사 이름으로 부활했다. 지난 연말 한국 진출을 선언했으니 곧 테슬라 전기차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과학기술과 신경제의 주도권을 두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이 각각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가의 모습으로 되살아난 느낌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정말 걱정스럽다. 요즘 한국 경제가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다. 규모의 경제에선 중국에 밀리고 기술에선 일본에 뒤진다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진짜 두려운 건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문제다. 에디슨이나 테슬라 같은 도전자나 혁신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피도 눈물도 없는 경영권 다툼이나 면허나 허가를 둘러싼 기득권 쟁탈전이 난무할 뿐이다. 이병철과 정주영 같은 이가 보여줬던 상상력과 도전정신도 현실 안주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여전히 테슬라형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에디슨형 산업을 장악해가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 경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