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발 ELS 습격…1조4000억 상품 원금손실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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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20일 기관과 외국인의 동반 매도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 거래일 대비 44.19포인트(2.34%) 내린 1845.45로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8월 24일 이래 최저 수준이다. 사진은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딜링룸. [뉴시스]

‘설마’가 현실로 다가왔다. 중국 증시가 급락하면서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끈 주가연계증권(ELS)이 무더기 원금손실 위기에 처했다. 당장 홍콩 증시의 H지수에 연계된 15조6545억원어치 ELS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41조 중 15조 홍콩 H지수 기반
어제 한때 8000 아래 떨어져
지난해 4~6월 발행된 상품들
무더기 원금손실 구간 진입
중도환매 땐 수수료도 내야

홍콩 H지수가 20일 장중 한때 8000포인트 아래로 떨어지면서 이날 하루에만 약 1조4000억원어치의 ELS가 원금손실 위험에 노출됐다. 홍콩 H지수는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커 손실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ELS는 지난해 전성기를 누렸다. 저금리 장기화로 정기예금을 대체할 투자상품을 찾던 투자자들이 대거 ELS 시장으로 몰렸다. 대표적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꼽혀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부상했다.

ELS 발행잔액은 일반인 대상의 공모만 40조9401억원에 달했다. 특히 홍콩 H지수를 기반으로 한 ELS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들로 구성된 H지수는 지난해 4월 1만4000선 위로 뛰어올라 5월 26일 1만4801.94까지 치솟았다. 당시만 해도 H지수가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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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금손실 위기에 몰린 ELS도 H지수가 1만3000선 위에 있던 지난해 4~6월 발행된 상품이다. 지난 12일까지만 해도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한 ELS 상품의 투자원금은 1565억원에 불과했지만 일주일 만에 10배로 불었다.

H지수가 7500으로 내려가면 2조4862억원, 7000으로 내려가면 4조7335억원어치의 ELS 상품이 원금보장을 받지 못하게 된다. 6000선으로 내려가면 이 금액이 11조원을 넘어선다.

 물론 H지수가 원금보장 경계선 밑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ELS가 무조건 원금 손실을 보는 건 아니다. 만기 때 H지수가 수익 구간으로 반등하면 원금과 함께 수익금도 챙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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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H지수가 녹인 구간에 들어갔다는 건 뒤집어 말해 반 토막 이하가 났다는 뜻이다. 따라서 수익 구간으로 반등하자면 앞으로 H지수가 두 배 이상 올라야 한다.

그런데 현재 상황만 보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H지수를 비롯한 홍콩 증시의 하락 요인은 홍콩달러 약세와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자본 유출 심화다.

20일 미국 달러에 대한 홍콩달러 가치는 장중 7.8243홍콩달러까지 떨어졌다. 2007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홍콩달러 값은 올 들어 20일까지 0.91% 하락했는데 변동 폭이 제한된 페그제에선 사실상 폭락이다. 홍콩에서는 이 때문에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에는 악재다. 여기다 유가 하락의 충격까지 겹쳤다.

이날도 H지수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페트로차이나(-6%)와 중국해양석유공사(CNOOC·-5.99%) 등 유가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대형주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지수를 끌어내렸다. 이로 인해 아시아 증시까지 일제히 하락했다.

홍콩 H지수는 전날보다 4.33%, 항셍지수도 3.67%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03%, 닛케이225는 3.71% 하락 마감했다. 코스피는 2.34% 빠졌다.

 투자자들은 판매업체들이 ELS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ELS가 모두 원금보장형 상품인 것처럼 오해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김지혜 교보증권 연구원은 “ELS 상품은 대부분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투자상품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연구원은 “다만 지금 중도환매 하면 지금까지의 지수 하락 폭만큼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중도상환 수수료까지 내야 한다. 대부분 만기가 2년 정도 남은 만큼 신중하게 좀 더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하현옥·이승호 기자
kailas@joongang.co.kr

◆주가연계증권(ELS)=말 그대로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상품이다. 그중에서도 계단식 하락형(스텝다운형)이 주종이다.

이 상품은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 주가가 만기 때 일정한 구간 위에 있으면 원금과 수익금을 받는다.

예컨대 ‘가입 시점 대비 80% 이상’인 ELS는 가입 시점 주가지수가 1000일 때 만기 때 지수가 800 미만으로만 안 떨어지면 원금과 수익을 준다는 얘기다.

여기다 안전장치가 하나 더 있다. ‘원금보장 경계선(녹인 구간)’이다. 가입기간 동안 지수가 한 번이라도 원금보장 경계선 밑으로만 안 내려가면 적어도 원금은 보장해주는 기준선이다.

대개 원금보장 경계선은 가입 시점 지수의 40~60%로 설정된다. 지수가 반 토막 이하로만 안 떨어지면 원금은 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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