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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3色 IT빌딩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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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벤처빌딩들도 업종에 따라 특화하고 있다.게임업체들이 몰리는 빌딩이 있고,반도체업체들이 몰리는 빌딩이 있다. 같은 업종의 기업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정보도 공유하고 개발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많은 게 끼리끼리 모이는 이유다.

예컨대 서울 가락동 IT벤처 타워에는 비(非)메모리 반도체 업체들과 보안업체들이 입주해 정보를 공유하며 시너지효과를 얻고 있다.구의동 테크노마트 빌딩에는 한국 게임의 미래를 짊어질 게임업체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구로공단의 에이스테크노타워는 IT 부품업체들이 입주해 주변의 제조업체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제품개발로 밤을 지샌다.

정보통신부도 동종업종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벤처빌딩을 지정할 때 비슷한 업종 기업들이 몰려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IT빌딩 세곳을 찾아 그들만의 특징을 알아봤다. (편집자)

1970~80년대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문패를 달고 IT 단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굴뚝산업 공장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은 90년대 후반 이후 고층 건물들이 세워지더니 이곳에 IT 부품.장비업체들이 모여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단지 중심부에 자리잡은 '에이스테크노타워'다. 97년부터 지난 5월까지 차례로 완공된 12~15층짜리 건물 여섯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5백50여 업체의 사무실과 공장이 들어서 있다.

고층건물이면서도 층마다 제조 공장이 들어서도록 설계된 것이 에이스테크노타워의 특징이다.

단지 관리공단에 따르면 에이스테크노타워에 입주한 5백50여 업체 중 80%가 정보통신 기업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부품 및 장비 제조업체다.

이곳의 장점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 서부간선도로와 남부순환도로가 바로 붙어 있어 인천 남동공단이나 안산 시화공단 등으로 제품을 쉽게 나를 수 있다. 또 대림역과 구로공단역이 붙어 있어 일반 교통도 편리해 사람들이 오가며 상담을 하거나 정보를 나누기에도 좋다고 입주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평당 3백60만원 수준의 분양가도 매력이다. 강남의 연간 임대료(평당 5백만원선)보다도 적은 돈으로 '내 회사 건물'을 차릴 수 있다.

테크노타워에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 OTS테크 이홍재 과장은 "같은 건물에 있는 업체에서 부품을 사면 훨씬 싼값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교통조건이 좋아 물류 비용이 들지 않는데다 '얼굴 맞대고 지내는 사이'라 웃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할 방도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폐쇄회로 감시장치(CCTV)용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생산하는 컴아트시스템 관계자는 "여러 업체가 한 곳에 모여 있다 보니 5~6곳과 연구개발 협력도 하고 있다"면서 "경쟁업체가 많다는 것도 업계 변화를 빨리 감지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하드웨어 업체들이 모여들다 보니,장비 제어용 반도체칩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업체까지 찾아들고 있다. 굴뚝으로 대표되던 옛 구로공단이 명실상부한 IT 산업 집적단지(클러스터)의 하나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컴퓨터 제조업체인 현주컴퓨터가 본사를 근처로 옮겨 IT 클러스터의 형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에이스테크노타워를 담당하는 관리공단 이행만 과장은 "내년 말 완공하는 일곱번째 건물도 IT제조업체들의 신청이 몰려 분양이 끝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자리잡은 IT벤처타워는 정보보안과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메카다. 50여개 IT업체는 물론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정보보호산업협회(KISIA).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IT Soc(시스템온칩지원센터) 등 관련기관들이 함께 입주해 있다.

18층짜리 두 동으로 이뤄져 있는데 동관에는 반도체업체와 기관들이, 서관엔 보안업체와 관련기관들로 특화돼 있다.

국내 정보보안계획을 수립.집행하는 기관인 KISA는 2001년 이 빌딩 서관에 둥지를 틀었다. 이와 함께 어울림정보기술.정보보호기술.사파소프트.이시큐리티.시큐아이티 등 10여개 보안업체도 속속 옮겨왔다.

벤처타워가 일약 '시큐리티 밸리'로 부상한 것이다. 어울림정보통신 이은진씨는 "보안제품의 인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KISA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정보보안업체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이득"이라면서 "KISA 관계자들과 만나기도 편리하고 각종 세미나 등에도 참석해 정보를 얻기도 쉬워 좋다"고 말했다.

임대료가 '테헤란밸리'보다 저렴하다는 것도 업체들이 벤처타워를 선택하게 한 원인이다. 서관은 '인텔 신화'를 꿈꾸는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본산이기도 하다.

이노자인.아라리온.쏠리테크.아이앤씨테크놀로지 등 2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80여개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넷 중 하나는 이곳에 있는 셈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ETRI가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세운 반도체지원기관인 'IT Soc 지원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지원센터는 개별기업들이 갖추기 힘든 고가장비인 반도체칩 테스트 장비와 함께 각종 설계.개발장비를 갖추고 국내외 최신 기술 등 시장정보도 제공하고 있어 중소 반도체 업체들의 '젖줄'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원센터 손진우 팀장은 "입주업체들에 반도체 장비뿐 아니라 복사기.회의실 등도 빌려주고 있다"며 "현재 창업보육업체 18개를 포함, 40개 업체에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업체 NOG엔터테인먼트 조영우(36)대표는 테크노마트를 자신을 키워준 둥지나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조 대표는 4년 전 동료 4명과 함께 한국 최고의 게임업체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서울 성동구 구의동 테크노마크 빌딩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1년 뒤인 2000년 2월 조 대표는 고민에 빠진다. 개인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려 했는데 마땅한 컨설팅회사를 찾지 못한데다 찾는다 해도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다.

이때 빌딩 내에 위치한 게임산업개발원 자문위원실이 해결사 역할을 해주었다. 자문위원실의 금융권 전문가와 공인회계사가 나서 법인설립을 적극 도와줬다. 상담 비용도 공짜였다.

서너달이 지난 후 조 대표는 패키지 게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업은 순조롭지 못했다. 이때 조 대표는 같이 입주해 있는 주위 게임업체들의 도움을 받았다. 주위 게임업체 사장들은 초고속 인터넷 발달로 온라인게임이 유망하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그해 말 조 대표는 판단착오를 인정하고, 곧바로 온라인게임 개발을 서둘러 지난 3월 '플라스틱스'라는 온라인 롤플레잉게임(RPG) 개발에 성공했다.

출시 3개월 만에 1천여명의 회원을 확보했고 삼성전자가 게임개발능력을 인정해 자금지원을 물론 마케팅까지 대신해 주겠다고 나섰다. 직원도 창업 당시 5명에서 현재 18명으로 세배 이상 늘었다.

조 대표는 "테크노마트는 명실상부한 국내 게임산업의 중심"이라며 "입주해 있는 게임관련 기관과 게임업체들이 직.간접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테크노마트가 국내 게임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39층인 이 빌딩엔 1백50여 정보기술(IT)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는데 이 중 약 3분의1인 42개 업체가 게임관련 기업들이다. 게임업체들이 이처럼 테크노마트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최고의 게임인프라시설 때문이다.

게임산업개발원에서 운영하는 게임종합지원센터에는 게임관련 도서 4천여권과 3천여 게임영상물 등이 비치돼 있어 업체들의 연구개발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빌딩 1층에는 대규모 아케이드 게임장이 있어 개발한 게임을 시연할 수도 있다. 임대료도 창업 보육 중인 업체의 경우 평당 1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1999년 게임업체 입주가 시작된 이래 1백여 업체가 이곳에서 창업, 기반을 다진 후 둥지를 떠났다. 이 중 20여개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게임업체로 성장했다. 한게임으로 유명한 NHN과 국내 최대 게임유통업체인 한빛소프트도 99년 이곳에 입주, 기반을 다진 뒤 2000년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겼다.

글=최형규.조민근.권혁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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