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으로 네팔 오지에 의약품 전달한 '엔젤스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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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네팔 누와콧 지방의 나르자만답 마을에서 현지아이들과 함께 의약품 수송용 드론을 들고 서있는 소셜벤쳐 엔젤스윙의 팀원들. 왼쪽부터 김대현·서지숙·박원녕·모영화·김승주씨. [사진 엔젤스윙]

드론으로 네팔 오지 마을에 의약품을 전달한다고?"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기술을 연구하고, 드론을 만들고, 수백 번의 시험비행을 거쳐 네팔 상공에서 드론을 날렸다. 약품 상자는 2㎞ 떨어진 마을에 무사히 전달됐다. 각기 다른 전공의 대학생 8명이 만든 소셜벤처 '엔젤스윙'의 이야기다.

엔젤스윙의 무모한 프로젝트는 지난해 3월 서울대 벤처경영학과의 '창업실습론' 수업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이 팀을 이뤄 실제 아이디어를 내고 창업을 구상하는 수업이었다.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왔던 박원녕(25)씨와 정치외교학과 학생 전술이(25)씨가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네팔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때 항공우주학을 전공한 박씨가 네팔을 도울 수 있는 드론을 제작해 비정부기구(NGO) 등에 싼값에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카메라를 탑재해 피해지역의 '정밀지도'를 제작할 수 있는 드론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물자공급이나 건물 재건 등을 위해선 각 지역의 피해 규모를 파악해야 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답사하는 당시의 방법은 위험하고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이후 둘은 본격적으로 드론 제작에 착수했다. 경영학·재료공학·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인력을 모았다. 강유빈(25)·김대현(23)·김승주(23)·모영화(23)·서지숙(22)·최성준(25) 씨가 합류하면서 엔젤스윙 팀이 구성됐다.

하지만 드론 제작은 쉽지 않았다. 생소한 분야인 드론에 대해 직접 구글과 책을 뒤져가며 연구해야했고,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값싼 부품을 직접 수입해야했다. 3개월여를 꼬박 연구한 끝에 정해진 지역을 이동하며 사진을 찍고, 이를 조합해 조감도 형식의 정밀지도를 만드는 드론을 만들었다. 이 드론은 지난해 7월 카트만두대 공과대학에 직접 전달돼 네팔 피해 복구에 사용됐다.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팔 방문 당시 많은 주민들이 의약품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해 고생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강유빈씨는 "도로 사정이 열악하고 산지가 험해 병원이나 보건소를 가려면 5일을 꼬박 걸어야하는 마을도 있었다"며 "백신 하나면 나을 수 있는 병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오지에 의약품을 전달할 드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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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스윙이 제작한 의약품 배달 드론. [사진 엔젤스윙]

의약품의 무게도 견디고 정확한 위치에 상자를 떨어뜨릴 수 있도록 GPS와 고도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 카메라 등을 장착했다. 오래 날도록 배터리와 프로펠러도 개선했다. 가로·세로 1m의 드론은 평균시속 20㎞에 1㎏ 상당의 의약품을 달고 30~40분간 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제작 비용은 서울대의 지원을 받았다.

지난 4일 의약품 배달용 드론을 들고 네팔 누와콧 지방의 나르자만답 마을로 시험 비행을 떠났다. 카트만두에서 버스와 트럭으로 7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마을이다. 엔젤스윙은 현지 경찰의 도움을 받아 드론을 날려 보건소로부터 2㎞ 떨어진 마을에 주사기·백신·진통제 등 주민 10~20여 명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 상자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모영화씨는 "오는 3월엔 네팔 정부와 협력해 더 먼 마을까지 드론을 날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젤스윙의 드론이 의약품이 담긴 상자를 마을의 목적지까지 배송하는 모습. [영상 엔젤스윙]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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