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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전쟁 상처…위안부 피해 할머니 힘보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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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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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흐라 라줄리는 “여권 신장을 위해서는 아시아 여성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제1213회 수요집회에 참석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운동가 자흐라 라줄리(Zahra Rasouli·31)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갔다.

그는 영어로 동시통역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말을 이어폰으로 듣고 있었다. 집회가 끝난 뒤 점심 식사 자리에서 라줄리가 입을 뗐다. “이건 단지 한국·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인권의 문제, 특히 전쟁에 무참히 희생돼야 했던 여성 인권의 문제입니다.”

 라줄리는 영국 런던의 중동 여성 지원 단체인 ‘이란과 쿠르드 여성 인권조직(IKWRO)’의 상임활동가다. 주로 중동 국가 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 또는 사회적 폭력에 대해 상담해 주고 지원책을 마련하는 일을 한다.

한국에는 이화여대에서 진행하는 아시아·아프리카 비정부기구 여성운동가 교육 프로그램인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프로그램(EGEP)’ 참석차 왔다. 라줄리를 포함한 14개국 여성운동가 16명은 지난 6일부터 18일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나거나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라줄리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연은 더 각별히 다가온다. 성장 과정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라줄리의 가족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피해 이란으로 탈출한 난민이었다.

전쟁의 참상에서 살짝 비켜설 수는 있었지만 난민,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타국에서 받은 차별은 혹독했다. “학교에 공부하러 갔다가 ‘넌 자격이 없다’며 쫓겨난 적도 있고 길에서 경찰관에게 이유없이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어요. 더 비참한 건 이 모든 게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는 겁니다.”

 2002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활동이 한창일 때 라줄리는 조국 땅을 처음 밟았다. 황폐화된 나라에 한줄기 희망이 보였지만 그 안에서 여성들의 삶은 참혹했다. 명예 살인·할례(성기 훼손)·조혼 등이 고유 문화라는 이유로 자행되고 있었다.

라줄리는 ‘이런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개선시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부에서 1년간 일하다 국제정치·외교 등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 2006년 2월 한국 유학까지 결심했다. 이화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사실 한국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여자대학’을 알아보다 한국행을 택했어요. 제가 공부하면서 느낀 건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그동안 얼마나 억압받아왔는지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런 면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권리를 외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석사 과정(사회학)을 이수한 라줄리는 2년째 영국 내 중동 출신 여성들을 돕고 있다. 강제 결혼을 피해 도망쳐 온 소녀,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아내를 돕다 이들의 가족으로부터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여성뿐 아니라 소수자 인권 전반에 관심을 갖고 틀을 넘나들며 활동할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正義)를 공평히 누리는 세상을 위한 행진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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