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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얼굴 없는 테러' … 대통령에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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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6일 극우 보수성향으로 평가되는 한 인터넷 매체의 홈페이지 만화만평 코너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마 한가운데를 저격수가 조준하는 장면이 올려졌다. 미국 영화 '스나이퍼(저격수)'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김정일 정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을 향해 "한 번만 더 민족의 원수 김정일을 두둔했다가는 머리에 총알을 박아버리겠다"는 문구까지 적혀 있었다. 이전에도 사이버 공간에 정치인을 희화한 패러디물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이번 경우는 단순한 패러디 차원을 넘어선 노골적인 사이버 공격이었다.

사이버 폭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개인은 물론 정치인, 심지어 대통령까지 사이버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급기야 이해찬 총리가 18일 국무회의에서 "철저한 단속을 위한 법률적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도 넘어선 사이버 폭력=최근 사이버 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개인은 물론 연예인.정치인 등 무작위다.

이 총리도 최근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월간지 기사를 인용, "이 총리가 과거 주민등록증을 거둬 북한에 보내줬다"는 사실과 전혀 다른 음해성 내용이 올랐던 것이다. 지난 1월 발생한 이른바 '연예인 X파일'은 전형적인 사이버폭력 사례다.

지난달 30일 서울의 모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씨가 여자친구와 함께 잡담을 나누던 B씨에게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하다 폭행당했다. 이에 A씨는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해당 사건을 폭로하는 글을 올렸고 B씨는 사이버 테러 대상이 됐다. 일부 게시판에는 B씨와 그의 여자친구 사진과 인적사항이 공개되기도 했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은 일종의 사이버 테러적인 성격을 띤다"며 "사이버 세계의 명예훼손은 끝간 데 없이 퍼져나간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응에 한계=대통령 암살 패러디를 계기로 경찰은 18일부터 6월 말까지 사이버 폭력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단속 대상은 ▶인터넷상에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비방하는 행위 ▶협박.공갈하는 행위 ▶통신 매체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유발하는 행위 등이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행 법체계하에서 사이버 테러는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에 해당한다"며 "이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처벌 가능한 친고죄로 검찰이나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하기가 사실상 어렵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체계를 보완하려면 사이버 테러 피해자의 명예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이버 테러범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어떻게 가능한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명예훼손.음란물 등에 대해 삭제 또는 시정 요구를 하고 있지만 폭력 근절에는 한계가 있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인터넷상의 명예훼손과 욕설 등을 막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려다 무산됐다.

정통부 관계자는 "각계 각층의 반대로 인해 인터넷 실명제는 현재 물밑으로 잠복한 상태"라며 "인터넷 실명제는 명예훼손 등 각종 사이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성.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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