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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중국을 시험대에 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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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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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중국을 새로운 시험대에 올렸다. 첫째, 신뢰의 시험대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중국이 이전과 같이 관용의 모습만 보일 경우 국제사회는 인접한 동맹국의 핵무장도 제어하지 못하는 국가를 세계 2강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을 것이다. 둘째,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의 시험대다. 북한의 대중 무역과 외화벌이가 활황인 중요한 이유는 중국 관료의 각종 부패가 묵인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을 제재하더라도 효과가 없다면 그 이유는 중국의 고질병인 부패 때문이다. 이는 다시 대국에 대한 신뢰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충분히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북한이 폐쇄 경제일 때 중국에는 외교적 비난에 동참하거나 북한 송유관을 잠그는 양 극단의 선택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무역의존도가 50%를 넘고 그 대부분이 중국과의 거래에 쏠려 있는 북한을 대상으로 중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매우 많다. 별도의 제재 없이 기존의 법과 규제만 제대로 집행해도 중국은 북한에 대해 상당한 경제적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에 들어가는 현금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대중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북한 지하자원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지하자원 수출 대금의 상당액은 북한 권력 기관과 정권의 외화 수입이 된다. 상업적 거래를 중국 정부가 금지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북한 무연탄을 수입해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에 대한 환경 규제와 수입 지하자원에 대한 품질 검사를 강화하면 실질적으로는 경제제재와 비슷한 효과를 가질 것이다. 대기오염을 줄여야 하는 중국에도 필요한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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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부는 북한 근로자의 불법 취업을 막을 수 있다. 현재 중국 내 북한 근로자는 수만 명이 넘는다. 최근 발간된 책을 보면 단둥의 북한 근로자 다수는 정식 노동 허가 대신 국경주민에게만 허용되는 ‘국경통행증’을 발급받아 일한다. 중국 기업은 1인당 300달러의 월급을 북한 관리인에게 지급하고 있으며, 북한 근로자는 이 중 60~70달러만 받을 수 있다. 만약 북한 근로자의 불법 취업이 금지된다면 수백억원에 달하는 외화가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북한으로의 현금 유입에 대한 국경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번 돈을 북한으로 보내려면 최종적으로는 국경을 건너는 인편을 이용해야 한다. 금융제재로 인해 북·중 간 은행송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외환관리규정은 5000달러 이상의 반출입 시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입북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다. 만약 중국이 현금 반출을 엄격히 조사하고 초과 금액에 대한 적법성을 심사한다면 북한의 외화수입은 크게 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주민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보따리 무역상은 중국 세관원에게 얼마의 뇌물만 주면 규정보다 세 배 많은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이를 잘 감시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보따리 무역액이 크게 줄 것이며 이는 북한 시장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그 결과 시장 활동으로 먹고사는 대부분의 북한 주민은 속으로는 반핵 데모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미국이 고려할 수 있는 제재 수단도 있다. 북한 지하자원 수출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3자 제재(secondary boycotts)’를 가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이란의 석유수출에 대해 집행한 제재와 유사하다. 북한의 기업은 모두 국영기업이며 그중 지하자원 수출은 당과 군 등 북한 핵심 권력기관의 생명줄이다. 만약 미국의 제재와 중국의 엄격한 법 집행이 결합된다면 북한 외화 수입은 매년 1000억원 이상 감소할 것이다.

  이번 핵실험은 중국의 결정에 따라 북한 정권과 경제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북한 정권은 5월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강성대국의 두 축인 핵과 경제를 김정은이 다 잡은 것으로 선전하려 했을 것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형 이벤트를 벌였을 수도 있다. 혹은 모란봉악단 사건으로 심기가 뒤틀려 김정은이 중국을 무시하는 시위를 벌였을 수도 있다. 그 동기는 특정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중국식으로 북한을 손볼 수 있는 호기가 왔다는 것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하지 못한 채 중국에 사정하고 미국에 의존하는 수동적 자세를 견지했다. 한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은 실체가 모호한 가운데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으로 실패했다. 지금처럼 대통령은 원론적 선언, 공무원은 과거 정책만 반복하면 또 실패한다. 우리의 전문성과 창의력을 총동원해 북한 구조를 변화시키고 북한 정권과 엘리트, 주민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펴야 한다. 우리 후손들이 북한 핵폭탄까지 떠안고 살게 할 수는 없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