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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철수 시즌2, 이상과열 혹은 빅뱅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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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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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정치학자로 살다 보니 가끔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요즘의 안철수 현상처럼 폭발적 변화가 솟구칠 때면 앞날을 궁금해하는 질문이 쏟아지곤 한다. 신당은 4월 총선에서 기존 야당을 제치고 제2 정당으로 부상할 것인가? 안철수 의원은 신당 돌풍을 2017년 대선까지 이어 가게 될까? 안철수 현상은 이른바 1987년 민주화 체제를 해체하는 빅뱅을 불러올 것인가?(이렇게 물어오는 이들의 상당수는 사실 스스로가 원하는 답을 이미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신당이 20대 총선에서 몇 석을 얻게 될지, 안철수 의원이 범야권의 대선 후보가 될 것인지를 점치는 일이 정치학자들의 영역은 아니다. 미국식 정치과학의 영향이 커지면서 정치학자들은 종종 과학적 예측을 주문받지만 우리 정치 현실이 과학적 예측이 가능할 만큼 규칙적인 운동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잖은가? 다만 그동안의 정당개혁 역사를 차분히 돌아보면 안철수 현상 2.0의 잠재적 파괴력, 내재적 한계들을 대략적으로 그려볼 수는 있다. 짧게 말하자면 안철수 신당은 4월 총선에서 상당한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곧 심각한 내분에 직면할 위험도 크다. 분열의 핵은 안철수 현상이 ‘인기 있는 리더-기득권 정치인(국회의원)-변화를 원하는 지지자’라는 불안한 삼단 구조 위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삼단 구조가 빚어내는 삼위 불일체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서 안철수 시즌2는 대박 흥행으로 이어질 수도, 혹은 조기 종영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다.

 일찍이 70년대 미국에서 거세게 불었던 정당 민주화 운동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정당개혁 과정에는 하나의 삼위 불일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석화된 기성 정당들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기반으로 개혁을 추진할 때 정당들은 개방성, 시민들 기대에 호응하는 반응력, 정당 내부 응집력이라는 세 가지의 사활적 목표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게 된다. 안철수 현상에 대입해 보자면 신당은 자신들만의 기득권 쟁탈전에 몰두하는 기성 정당들에 대한 시민들의 염증, 그리고 “정당들은 응답하라!”는 반응성의 요구를 동력으로 삼아 질주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응답하기 위해 신당은 새 인물, 새 아이디어에 문을 활짝 여는 정당 개방을 추구하게 된다. 의심쩍은 낡은 인물들도 적지 않게 섞여 들지만 어쨌든 신당은 새 얼굴, 새 아이디어의 적극적인 흡수를 통해 기성 정당들과 구분되는 개방성을 장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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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개방성과 반응력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내부 응집력의 약화라는 치명적 대가가 따라붙는다는 점이다.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과의 직접교감, 그에 따른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개방형 리더와 지역구 이익, 재선의 목표, 정당 내부 권력(이들을 총칭하면 의원 기득권이 된다) 등의 현실적 이익에 충실한 프로 정치인들은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개방형 정당의 숙명으로서의 삼위 불일체는 2002년 노무현 현상 때 그 민낯을 생생히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기성 질서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바탕으로 여당의 대선 후보로 등장한 개방형 리더였다. 여당 내부의 권력보다는 제도권 밖 시민들의 열망, 즉 노사모 열풍을 딛고 등장했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다소간 주춤하자 당시 여당 의원들은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라는 기이한 이름의 모임을 만들고, 노무현 후보의 중도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준)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했지만 개방형 리더가 주춤하자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나선 것이 바로 프로 정치인들의 본색이었던 셈이다.

 2016년 5월 여의도, 변화의 바람을 안고 20대 국회에 들어서자마자, 안철수 의원은 당내에서 커다란 시험대에 서게 될 것이다. 안철수 현상을 등에 업고 국회에 진출한 수십 명의 소속 의원은 의원 자율성이라는 명분하에 제각각의 이익을 추구하는 프로 정치인으로 급격히 변모하게 된다. 이들이 빚어내는 신당 내부의 불협화음은 20대 국회 초반 원내 정당들 간의 교착으로 이어질 것이다. 19대 국회 양당제에서도 불안정하던 국회 내 정당 간 협상은 사실상의 3당 체제하에서 더욱 난마처럼 얽혀들 것이다.

 정리하자면 표면적으로는 단지 안철수 신당의 집안 사정 정도로 보이는 당내 응집력 문제는 여러 구조적 이슈가 두루 연결된 결정적 뇌관이다. 이것이 파열되면 개방형 정당은 맥없이 주저앉고 안철수 의원은 다시 또 홀로 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안 의원이 개방형 정당의 개방성, 응집력, 반응성이라는 삼위 불일체의 균형점을 찾아낸다면 그 순간 제도정치권 전체는 87년 이후 최대의 빅뱅으로 빨려들 수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 약력: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노스웨스턴대 박사. 현재 중앙대 교수.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이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