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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선착의 효는 잃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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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16강전 2국> ○·장웨이제 9단 ●·김동호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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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보(34~45)= 우열이 확연하게 갈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초반의 리듬은 백이 활발하다. 흑이 좌상일대에 쌓은 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반면 백은 상변 흑 세력에 뛰어들어 타개해 나오기까지, 흑의 좌상일대 세력을 상당 부분 지워버렸다.

 정체하고 있어도 세계타이틀홀더의 관록은 살아있는 것인지 36부터 40까지 기민하게 안정하고 44로 튀는, 반면운영이 유연하다.

 44가 주는 속도감이 경쾌하지 않은가. 침착한 힘의 바둑을 구사한다더니 오늘은 가볍게 실리를 챙기며 앞서 나가는 속력행마를 선보인다. 물론 흑도 아직까지 큰 실수는 없다. 상변에 침투한 백 일단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버페이스는 있었으나 승부를 좌우할 만큼의 악수는 아니다.

 우상귀 35부터 39까지 실리를 지켜 흑백 쌍방의 균형을 갖추고 중앙 45로 힘차게 눌러간다. 강렬한 정문의 일침! 이런 곳을 두드릴 여유가 있다는 건 여전히 선착의 효를 잃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검토실에선 중국의 핫스타 커제 이야기가 한창이다. 최근 스웨를 밀어내고 중국랭킹 1위에 오른 커제는 97년생. 한국의 신예강호 변상일(한국랭킹 19위)과 동갑내기이고, 지난해 2월 제33기 KBS 바둑왕전 타이틀을 획득한 이동훈(98년생, 한국랭킹 9위)보다는 한 살이 많다.

 커제가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유는, 10대에 세계타이틀을 거머쥔 강자이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10대답게 톡톡 튀는 언행으로 더 많은 눈길을 끈다. 여러 개의 팔찌를 하고 붉은 가죽점퍼를 입는 등 거침없는 힙합스타일의 옷차림도 젊은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바둑은 수천 년을 내려온 고생창연한 유희로 고요하게 가라앉은 정적인 세계를 웅변해왔는데 그 안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여의봉을 휘두르는 제천대성처럼 요란한 존재가 툭 튀어나온 것이다.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가.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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