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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병신년과 조발백제성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종전 70주년의 다사다난했던 을미년을 보내고 2016년, 간지(干支)로 보면 병신년(丙申年) 원숭이해를 맞이하였다. 병(丙)은 붉은 것을 의미하므로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 해이다. 붉은 원숭이는 지혜롭다고 한다. 금년에 자녀가 태어나면 지혜로운 아이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해이다.
 중국 고대의 은(殷)대 갑골문에 나타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간지는 10개의 천간(天干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12개의 지지(地支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조합한 것으로 60개의 이름(甲子)이 나온다. 태어나서 60년이 되어야 같은 이름을 만난다하여 ‘갑자’가 한 바퀴 돌았다는 의미로 환갑 또는 회갑이라고 부른다. 10개의 천간은 5행설에 의해 5가지의 기본 색과 5개의 방향을 나타낸다. 한 가지 색과 방향이 2년간 계속되는 셈이다. 천간 중 갑을은 청색, 병정은 적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백색, 임계는 흑색이다. 방향으로는 청색은 동향, 적  색은 남향, 황색은 중앙, 백색은 서향, 흑색은 북향이다.
 중국 한(漢)대에서는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하여 생활 주변에 흔히 있는 12가지의 동물로 12지지를 나타나게 하였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지만 용과 원숭이는 다르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중국의 어디에도 없으나 신화와 전설을 통해 신성한 동물(靈獸)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東國)에는 본래 원숭이가 야생으로 서식하지 않았다. 선사시대 한반도의 동굴에서 원숭이 뼈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 이후 날씨가 추워서 멸종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따뜻한 중국의 남방과 일본에서는 야생에서 서식하여 흔히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원숭이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원숭이를 야생에서 접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원숭이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것 같다. 원(猿)과 성(猩)의 합성어인 ‘원성(숭)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순수한 우리말로 잔나비라고 불렀다. 잔나비는 재주가 많은 원숭이(납 또는 나비)를 뜻한다. 금년의 신(申)과 원숭이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띠처럼 특별한(迷信的) 의미를 부여한다. 12년 마다 오는 원숭이 해(申年)에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나오는 것도 사람들이 한 해를 원숭이와 연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 원숭이(monkey)에는 긴 꼬리가 있지만 꼬리가 없는 진화된 원숭이(ape)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하여 유인원(類人猿)이라고 부른다. 침팬지 고릴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 원숭이로 대부분 12지지와 함께 중국에서 전해온 것이 많다. 원숭이에는 머리가 모자라는 원숭이와 지혜로운 원숭이의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에서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 고대 소설 서유기의 손오공은 카리스마를 가진 매우 지혜로운 원숭이다. 손오공은 인도의 라마신을 도운 원숭이 신(神) 하누만(Hanuman)이 모델이라고 한다. 지금도 인도의 힌두교 성전에 가면 원숭이 얼굴을 한 하누만 신이 조각되어 있다. 신라시대 무덤에서 길상의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원숭이 토우(土偶)도 불교전래와 함께 신라에 도입된 하누만 신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원숭이를 원(猿)과 함께 후(?)라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후’라고 즐겨 부른다. 후의 발음이 제후(諸侯)의 후(侯)와 글자와 비슷하고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출세를 하고 싶어 하는 선비들은 벼슬(侯)을 얻기 위해 원숭이(?)를 가까이 하고 싶어 한다. 원숭이가 서식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원숭이 대신 그림이나 도자기를 지녔다고 한다. 중국의 지인들은 ‘후’가 복(福 중국음 Fu)의 발음과 비슷하여 원숭이를 사악을 물리치고(?邪) 복을 가져다주는(發福) 동물로 여기고 있다.
 원숭이의 새끼사랑이 유명하다. 중국에서 원숭이의 새끼 사랑을 강조하는 뜻에서 단장(斷腸)의 고사를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이야기이다. 원숭이가 새끼를 품에 안고 있는 모성애적 예술 작품이 많이 눈에 띈다.
 일본에서도 원숭이가 야생으로 서식하여 원숭이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다. 옛날 일본의 무사(사무라이)들이 칼을 잘 쓴 것은 칼의 자상(刺傷)을 겁내지 않기 때문인데 원숭이를 통해 상처를 잘 낫게 하는 비밀 온천을 찾아낸다고 한다. 다친 원숭이를 따라 가보면 산속에 숨겨진 온천이 있고 그 온천을 이용한 원숭이의 상처가 말끔히 나은 것을 알아 낸다.
일본에는 원숭이를 ‘사루(자루)’라고 한다. 세 마리의 원숭이 즉 ‘산자루(三猿)’전설이 있다. ‘자루’는 일본어에 하지 않는다는 부정의 접미사도 되므로 원숭이(사루)는 ‘하지 않는다(자루)’는 이중 의미가 있다. 안 듣고, 안 보고, 그리고 말하지 않는다는 세 마리의 원숭이(三猿)는 참고 또 참는 인내의 극치를 보여준다. ‘산자루’는 15세기 일본의 전국(戰國) 시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시대를 거친 후 일본 천하를 통일하는 도쿠가와 이예야스(德川家康)의 인내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멀지 않은 닛쿄(日光)에 있는 도쿠가와 사당(東照宮)에 가면 눈을 가리고 입을 가리고 귀를 가린 세 마리의 원숭이가 조각되어 있다.
 병신년의 신(申)에는 원숭이와 관련되는 ‘납 신(申)’의 의미 다음으로 두 번째의 의미는 성씨의 신(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씨는 평산 신씨인데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장군이라고 한다. 신숭겸(본명 三能山) 장군은 고려태조 왕건으로 부터 황해도 평산 지역의 식읍과 함께 신씨의 성을 하사(賜姓)받았다고 한다. 태조 왕건은 신숭겸의 가문이 크게 뻗어 나가길 기원하면서 신(申)씨 성을 주었는지 모른다. 신숭겸 장군은 후백제 견훤과의 싸움에서 위기에 처한 태조 왕건의 갑옷으로 바꾸어 입고 왕을 대신하여 싸우다가 전사(爲王代死)한 충절로 유명하다. 그의 충절이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쳐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전사한 신립(申砬)장군 등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집안으로 유명하다. 이율곡의 어머니로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사임당 신씨도 신숭겸 장군의 후손이다.
 신(申)의 세 번째 의미는 ‘펼 신(申)’ 즉 뻗어 나간다는 의미이다. 신(申)의 글자가 본래 밭 전(田)에서 아래로 위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다. 밭의 작물이 아래로는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새싹을 틔우는 모습이다. 그래서 신년(申年)은 새로이 출발하여 뻗어 나가는 해로 보기도 한다. 지난해 을미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치고 힘든 한 해였다. 그래서 2016년 병신년은 불처럼 붉게 타오르면서 크게 뻗어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모두가 기원한다. 이러한 염원을 담은 신년시(新年詩)로 이백(李白)의 ‘아침 일찍 백제성을 떠나며(早發白帝城)’라는 시(詩)가 생각난다.
 이백이 당(唐)의 숙종을 배신하고 난을 일으킨 영왕(永王璘)을 도왔다는 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의 유배길이 사천성 백제성 근처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 은사(恩赦)를 받았다. 기쁜 나머지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작은 배를 빌려 동 틀 무렵 물길 따라 400km 떨어진 강릉으로 한숨에 달려가는 모습이 이 시의 내용이다.

조사백제 채운간(朝辭白帝 彩雲間)
천리강릉 일일환(千里江陵 一日還)
양안원성 제부주(兩岸猿聲 啼不住)
경주이과 만중산(輕舟已過 萬重山)

 이백의 눈앞에서 삼협(三峽)의 수많은 산이 스쳐 지나가고 귓전에는 협곡 양안의 원숭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어려운 시절을 끝내고 새아침에 수많은 산들의 배웅을 받고, 벼슬길을 암시하는 원숭이의 응원소리를 들으면서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이백의 희망찬 마음이 가득하다. 병신년 금년 내내 우리 모두 이백의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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