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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아관파천의 치욕' 상기시킨 최경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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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인 1896년 병신년 2월. 고종은 아관파천(俄館播遷)을 감행한다.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 손에 참혹한 죽음을 맞은 을미사변(1895년)이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비밀리에 경봉국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아관)으로 몸을 피한 것이다. 이후 친일내각은 무너졌다. 하지만 대신 친러파 내각이 부상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1년만에 환궁한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국운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시무식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 ‘아관파천의 기억’을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입했다. 그는 “조선시대 갑오개혁의 실패는 2년 뒤 병신년 아관파천의 치욕을 낳았다”고 말했다. 갑오개혁은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이후인 1894년 개화파 관료들이 주도한 대대적인 정치·사회·경제 제도 개혁 운동이었다. 사실상 조선이 주체적으로 근대화할 마지막 기회였지만 미약한 개혁 동력과 일본 등 열국의 간섭, 보수층의 반발로 결국 실패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염두에 둔 듯 현재 추진 중인 4대 개혁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혁의 지연은 곧 위기의 방아쇠이고, 한 발 앞선 개혁이 번영의 열쇠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기재부 관료들에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국민이 체감하는 개혁을 반드시 이루어내자”고 당부했다.

최 부총리는 “새해에도 경제 여건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고 했다. “저유가, 미국 금리 인상, 신흥국 경기 둔화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크고 세계 수요 부진과 후발국의 기술 추격으로 수출 부진이 지속될 우려도 있다. 대내적으로는 경기회복세가 아직 탄탄하지 않다. 기업과 가계부채 등 잠재돼 있는 리스크 요인으로 인해 여건 변화에 따라 ‘한 순간에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이란 경고다.

이처럼 간단치 않은 현 경제 상황과 관련해 이날 최 부총리는 역사 속 '또하나의 병신년'도 언급했다. 몽고의 침입기인 1236년이다. 그는 "당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하는 등 민족의 역량의 모아 위기를 극복해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병신년이 시작되는 만큼 다시 한번 국민의 역량을 결집해 난관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자"고 강조했다.

세종=조민근·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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