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응팔세대 “남북 청소년들이 민족 동질성 알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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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독일의 젊은이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어 하나 되는 조국을 지켜봤다. 오른쪽 작은 사진들은 통일 직전 동독에 대해 배우며 통일의 꿈을 키웠던 서독의 ‘응팔 세대’. 왼쪽부터 올레 옌센, 볼프강 사이퍼스, 노이스 벤야민.

통일 직전인 1980년대 동·서독 관계는 지금의 한반도와는 달랐다. 인적 교류와 기초 인프라 투자, 경제 지원이 이뤄졌다. 통일 교육은 80년대에 가장 활기를 띠었다. 이때 학교에서 통일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서독의 ‘응팔 세대(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71년생 주인공들과 비슷한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다. 이들은 한국의 응팔 세대와 달리 동독에 갈 수 있었고, 어렵지 않게 동독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독일의 응팔 세대 3명을 만나봤다.

[평화 오디세이 2016] 통일, 교육부터 시작하자 <중>
3인이 말하는 독일의 통일교육

 ◆올레 옌센(43·BMW 파이낸셜 서비스 코리아 임원)

 -학교에서 동독에 대해 배웠나.

 “역사 수업에 제2차 세계대전을 배웠는데 상당 부분이 동독 관련이었다. 과제로 꼭 읽어야 하는 문학작품들도 있었는데, 동독에서 탈출한 사람들 이야기부터 공산주의 체제에 충성하는 동독인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동독에 가본 적도 있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 전인 87년 동베를린에 가봤다. 이모 댁에 가기 위해서였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 너무 쌌다. 함께 간 친구들과 ‘이 정도 가격이면 엄청나게 많이 사 먹을 수 있겠다’고 했는데, 동독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이 너무 비싸다고 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동독 또래들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어땠나.

 “서독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놀랐다. 어떤 노래가 유행인지, 어떤 밴드가 인기가 많은지 다 알고 있더라. 인상적이었던 건, 영어 이름을 갖고 있는 애들이 많았다. 70~80년대 동독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를 따라 아이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 체제에 항거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맨디, 신디, 코코 같은 이름을 가진 애들이 많았다.”

 -통일 교육과 관련해 인상 깊은 기억이 있나.

 “꼭 베를린 장벽에 가보라는 게 학교교육의 일부였다. 가는 길에 박물관이 있어서 장벽의 역사나 동독 탈출기 등을 접할 수 있었다. 디딤대 같은 것도 있었는데, 거기 올라가면 장벽 너머의 동베를린이 더 잘 보여 신기했다. 한국인들 중 비무장지대(DMZ)에 가본 이들이 별로 없다는 게 흥미로웠다.”

 ◆볼프강 사이퍼스(49·물류업 종사)

 -학창 시절 동독에 대해 어떻게 배웠나.

 “부모님이 60년대 동독에서 탈출한 분들이라 가족 과 동독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고등학교에선 소련 연방과 유럽의 안보 문제를 배울 때 동독 문제가 나왔다. 환경 관련 과목에서 동독의 강 등이 오염됐다는 내용을 배웠다.”

 -학교에 다닐 때 동독 주민과 한 민족이라고 인식하는 또래가 많았나.

 “동독인도 우리와 같은 독일인이며 같은 역사와 언어를 공유한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학생이 많았나.

 “통일이 유일하게 바람직한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89년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실제로 통일에 대해 논의한 적은 별로 없다.”

 -여전히 분단 상황에 있는 한국에선 학생들이 어떤 통일 교육을 받으면 좋을 것 같나.

 “독일처럼 어린 나이에 북한을 방문하는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남북 청소년들이 같은 민족으로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 수 있게 말이다. 차이점도 느끼겠지만 음식 맛이나 만드는 법이 얼마나 비슷한지도 알게 될 것이다.”

 ◆노이스 벤야민(40·한국외대 글로벌 캠퍼스 교수)

 -학교에서 동독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나.

 “정치나 역사 과목에서 분단 문제를 다뤘다.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기 위해 수학여행을 간 친구들도 있었다. 장벽 너머 사람들이 빤히 보이는데, 여기부턴 동독이라서 자유롭게 갈 수 없단 게 신기하다고 했었다.”

 -동독 주민들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졌나.

 “학교에서도 동독이 나쁘다거나 적이라는 식의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말투나 억양은 조금 다르지만, 그건 서독 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다. 동독이 공산주의 국가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두려운 대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동독이 택한 이념, 체제일 뿐이라고 구분해 배웠다.”

 -동독에 가본 적이 있나.

 “가족 방문을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통일 전에 세 번 다녀왔다. 드레스덴에 가 봤는데, 도시 모습은 서독과 비슷했다. 그런데 사소한 게 달랐다. 시내에 갔는데 아이스크림 가게에 엄청나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 고향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는 어디에나 있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동독에선 그게 아니었다.”

특별취재팀=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최익재·정용수·전수진·유지혜·현일훈·안효성·서재준 기자, 왕웨이 인턴기자, 통일문화연구소 고수석 연구위원, 정영교 연구원, 사진=조문규·김성룡·강정현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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