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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구로공단 땅 뺏긴 농민들 50년 만에 승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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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때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 명목으로 국가에 강제로 농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재재심까지 거친 우여곡절 끝에 50여 년 만에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3일 옛 구로동 농지 주인들의 유족 채모(70)씨 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의 재재심에서 “국가가 승소한 재심 판결을 취소하라는 취지의 서울고법 판결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대법원이 재심 판결에 대해 다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 재심 판결 다시 재심 첫 인정
농지법 개정, 땅 반환될지 미지수

 61년 당시 군사 정부는 구로동 일대 토지를 강제수용하면서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냈고, 66년 대법원에서 이들의 승소가 확정됐다. 해당 토지에서 농사를 짓던 300여 명은 국가를 상대로 9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하지만 68년 당시 서울지검은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며 수사에 착수, 농민들을 연행하고 가혹행위를 해 권리 포기나 소 취하 동의를 받아냈다. 일부 농민은 소송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6명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국가는 이 판결을 근거로 주민들이 승소한 민사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승소했다. 84년부터 진행된 ‘1차 재심’이다.

 그러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국가가 공권력을 남용했다”며 국가의 공식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유죄를 확정받았던 농민들은 형사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2011년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후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채씨 등은 2012년 ‘1차 재심’의 취소를 구하는 2차 재심을 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정부가 1차 재심에서 주장했던 재심 사유들은 근거를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토지 소유권을 농민들에게 이전하라”는 66년의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채씨 등이 실제 땅으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96년 시행된 농지법이 분배농지 등기를 3년 이내에 마치도록 규정한 데다 현재 토지 소유주의 등기부 취득시효가 완성됐는지 등도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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