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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메르스 상황 종료 …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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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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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대한보건협회장
서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

지난 2015년 최대 뉴스의 하나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였을 것이다. 지난해 5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185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38명이 목숨을 잃었고 1만7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격리됐다. 이처럼 전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 유행을 겪은 끝에 마침내 지난해 12월 24일 0시를 기해 보건 당국이 메르스 상황종료를 선언하게 됐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것처럼 보였던 한국이 이번 메르스 유행으로 아직은 일부 분야의 후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비슷한 해외 전염병의 국내 유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선진적 국가방역체계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제2의 메르스를 막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우리 국민은 과연 외래 전염병에 안전한 상황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메르스 유행의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유행은 단순 사건이 아니라 보건 당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뒤 여러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확산한 공중보건 위기사태로 봐야 한다. 정부는 조기에 정확한 정보를 국민과 의료기관에 신속하게 알려 협조를 구하는 ‘위기대응 소통’에 미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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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 진료환경은 열악했으며 전염병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음압병실 등도 충분하지 않았다. 의료기관 간 정보교류도 이뤄지지 않아 환자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도 화를 키웠다. 환자 간호를 보호자에게 의존해 환자 가족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으며 일반인의 입원실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 병문안 문화도 확산에 한몫했다. 여기에 역학조사를 적절히 수행할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앞으로 전염병 집단 발병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상황의 재발을 막으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중 응급실 개선은 메르스가 남긴 기본적인 숙제다. 보건 당국은 새해부터 비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면 응급의료관리료 등의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지원받을 수 없게 하는 등 응급실 이용을 억제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 같은 선진국처럼 응급실 입구에서 의사가 환자를 분류해 전염성 의심자와 일반인이 섞이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전염병 의심자에 대한 신속한 강제 격리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에볼라나 메르스처럼 공인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의 경우 격리가 최선의 확산 방지책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 당시 일부 환자·의심자가 격리 지시에 따르지 않아 문제를 일으켰다. 에볼라와 접촉한 여행객 전원을 증상과 관계없이 강제로 격리한 미국의 사례와 강제 격리를 거부하면 징역형을 선고하는 방안을 추진한 호주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제2의 메르스를 막으려면 전염병 확산의 원인을 제공한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수적이다. 메르스가 응급실을 통해 확산한 것은 응급실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환자들이 너도나도 종합병원·대학병원으로 몰리게 하는 상황도 한몫했다. 1차 동네의원→2차 작은 병원→3차 큰 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유럽 등에서는 대학병원에 몰리는 현상을 막고 의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동네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동네의원 의사가 지역주민의 주치의를 맡아 환자를 돌보다 위중한 병이 생기면 2차, 3차 의료기관으로 차례로 옮긴다. 하지만 한국 의료체계는 응급실만 거치면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급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환자들이 대기하다 전염병이 확산한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의 도입을 이제부터라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메르스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과제도 남겼다. 의료는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이 함께 발전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에선 공공의료가 10%대이고 민간의료가 90%에 육박할 정도로 불균형적이다. 앞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로 국립중앙의료원과 시·도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을 번듯한 병원으로 만들어 지역 환자가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들 공공의료기관이 보건소를 관리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면 메르스 사태 같은 것이 다시 터져도 일사불란하게 국민 안전과 건강을 지키면서 초기에 박멸할 수 있다. 방역처럼 이익이 생기지 않는 부분은 민간병원이 맡으려 하지 않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중보건 위기사태를 예방하려면 이를 맡아줄 공공의료 부분을 확충하는 게 답이다.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않고 증세만 완화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는 메르스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게다가 전염병은 당국의 노력만으로는 예방이 쉽지 않다. 정부는 물론 보건의료계·시민사회가 다 함께 나서서 한국을 안전하고 건강한 나라로 만드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박병주 대한보건협회장·서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