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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해양 실크로드 문명 대탐사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와 富를 지배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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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년 대만을 통치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함대에 맞서 1년여간의 전쟁끝에 대만을 수복한 영웅 정성공(鄭成功)은 제국주의 세력에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던 중·근세 중국 역사의 자존심이었다.구랑위섬에 위치한 정성공의 동상(사진 오른쪽 윗부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G2로 부상한 중국의 스텔스 구축함이 동중국해로 출항하고 있다.샤먼=김춘식 기자

#지난해 12월 2일,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목인 창러(長樂) 진강투이(金鋼腿). 저 멀리 대형 선박들이 출항하는 모습이 보인다. 명나라 정화(鄭和·1371~1433) 함대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남중국해와 인도양, 아프리카 연안까지 30여 개국을 원정할 때 항해를 시작했던 곳이다. 강폭이 족히 수㎞는 돼 보이는 민(?)강 하구에 거대한 정화 조각상이 우뚝 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조각상 높이 14.05m는 첫 원정에 나선 1405년을, 초석 2.8m는 28년간의 원정 기간을 의미한다. 인근에 조성된 ‘창러 하이쓰(海絲·해양 실크로드)관’ 앞마당에는 길이 20여m, 높이 7~8m의 돌로 만든 거대한 보선(寶船)이 세워져 있었다. 실물은 120m나 됐다고 한다. 고대 해양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던 푸젠성에 이런 조각물이 세워진 것은 다시 바다로 나가려는 중국의 ‘해양 굴기(?起·우뚝 섬)’를 상징한다.

#지난해 12월 6일, 푸젠성 샤먼(廈門)의 구랑위(鼓浪嶼)섬. 19세기 말 중국을 침략한 서구 열강의 대표 주자였던 영국이 조계(租界)를 설치하고 약탈적 무역을 했던 곳이다. 유명 관광지로 변신한 이곳은 중국인뿐 아니라 각국의 여행객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이 섬에 들어가려는 외지인은 황당한 차별 대우를 감수해야 한다. 구랑위에서 배로 5분 거리인 샤먼항 허핑(和平) 부두는 샤먼시민 전용이어서 외지인은 이용할 수 없다. 외국인을 포함해 외지인은 배로 20여 분이나 걸리는 샤구(厦鼓) 부두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도 허핑 부두(편도 8위안, 약 1430원)의 네 배가 넘는 35위안을 내야 한다. 푸념하고 따져도 소용없다. 이런 막무가내식 배짱은 어디서 나올까.

청나라 때 네덜란드로부터 대만을 수복한 정성공(鄭成功·1624~62) 장군의 동상을 둘러보고 구랑위를 빠져나올 무렵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스위스 인터내셔널호텔 인근 샤먼항 허핑 부두 쪽에 정박해 있는 중국 해군 동해함대 소속 신형 구축함 두 척에 답이 있었다. 19세기 말에 ‘아시아의 병자’로 조롱당하던 중국이 이제는 당당하게 군사대국으로 변신해 자국 이익을 한 치 양보 없이 지키겠다는 실력 과시처럼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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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젠성 창러에 위치한 정화의 동상. 지도의 루트는 본지 해양실크로드 문명권 탐사 취재팀이 정화의 발길을 좇아 탐사할 지역이다.

중국이 다시 바다로 향하고 있다. 고대부터 대륙과 바다를 동시에 호령했던 중국은 명나라 중기 이후 대륙국가로 위축됐다.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175년이 지나 체력을 회복한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시 힘을 해양으로 투사하려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구상이다. 이는 고전적 의미에서 동서 바닷길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넘는 중층 복합적 개념이다. 각각의 항구는 다시 육상의 벨트와 연결돼 거미줄 같은 망상으로 세계를 촘촘히 엮어 내게 된다.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14개 주변 국가를 연결한 뒤 다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계시키는 실크로드 경제벨트(一帶)에, 중국 연해에서 출발해 인도양~지중해~남태평양을 연계해 개발하려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결합한 해륙(海陸) 복합구상이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맥이 닿아 있다. 한·중이 윈윈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2015년은 명나라 정화 함대의 원정 610주년이었다.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1552~1618)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고 역설했다. 중국이 ‘바다의 고속도로’를 뚫으려는 이유다.

2016년 병신(丙申)년을 맞아 중앙SUNDAY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루트를 따라 대탐사에 나선다. 남중국해 연안의 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와 인도양·아프리카·홍해·지중해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따라 펼쳐진 해양 문명의 자취를 찾아 21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자는 취지다.

이번 탐사에는 본지 취재진과 함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원장 김성귀),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 주강현 원장이 동행한다.

광저우·푸저우·샤먼·취안저우=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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