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8년 숙원 존엄사법 이번엔 반드시 끝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의사가 연명의료 중단에 참여하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존엄사 법안이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닥쳤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0일 회의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 처리를 보류했다. 이 때문에 연내 처리가 물거품이 됐다. 4월 총선이 코앞에 닥치면서 19대 국회에서 처리할지 의문이다. 지금 통과해도 시행은 2년 후다. 18대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처리되지 않는다면 영영 물 건너 갈지도 모른다.

연명의료 결정은 한의사 영역과 거리 멀어
아무 말 없다 막판 불쑥 나서 법안 지연
국민 다수 반대하는 연명의료, 꼭 중단되길

 연명의료 중단이란 임종 단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연명 행위(이하 네 가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웰다잉(well dying)이나 존엄사와 같은 의미로 통용될 정도로 품위 있는 생의 마무리에 필수적이다. 그런데 사흘 전 법사위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의사가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참여해야 하고, 연명의료 행위에 한의학 시술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법안에 언급된) ‘담당의사’에 한의사를 포함하는 게 우리 의료법 체계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뿐만 아니라 말기환자 판정,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등에 한의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의원의 주장은 한의사협회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연명의료를 심폐소생술 등 네 가지 행위로 못 박고 있는 법안 2조 4호에 배치된다. 하위 법령에서 네 가지 외 다른 행위를 추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종교·윤리·철학·의료 등 각계가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다각적인 검토를 거쳐 2013년 정했기 때문이다. 네 가지는 현대 의료기기를 써야 하고 서양의학에 따른 약물을 쓴다. 현행 법률 체계상 한의사의 영역이 아니다. 의료기기 사용을 요구하는 한의사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그 문제는 이번 법안과 다른 테이블에서 논의해야 한다. 게다가 의료 현장에서 임종 과정에 한의사가 간여한다거나 침으로 사망 시기를 늦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연명의료 중단이 서양의학에 근거를 둔다고 본다. 그래서 18년 동안 의사들이 ‘소극적 안락사’를 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국민을 설득한 끝에 법안을 만들었고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그간 수많은 공청회나 관련 법안 논의에 일언반구도 없던 한의사들이 막판에 불쑥 끼어드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존엄사법이 없어서 한 해 5만 명의 임종환자가 중환자실에서 고통을 받으며 숨진다. 노인의 90% 이상, 국민의 70~80%가 연명의료를 반대한다. 정녕 한의사들이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이번 법안 통과 후에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맞다. 아직 12월 임시국회 일정(8일 폐회)이 남았다. 국회 법사위도 국민들의 염원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