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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핵심 “朴과 金 같이 못 가…야권 분열이 여당 분열 씨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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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으로 주재한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올해가 가기 전 주요 법안 등을 국회가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야권에 연일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안철수 신당,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까지 얽힌 분열 드라마엔 가속도가 붙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야권의 지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에 비해 평온해 보이는 새누리당이지만 속사정까지 꼭 그렇지는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두에 서서 지피는 ‘진실한 사람’ 논란과 험지 출마론, 공천·경선룰을 둘러싼 계파 갈등은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

여권에서 솔솔 피어나는 '친박 신당론'
“총선 4당 구도로 치러질 수도”
비박계 송년 모임에서 화제 올라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사례도
전문가 “창당 땐 친박 1당 가능성”

유승민 의원의 대항마로 나선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사무실 개소식에 친박계 의원들이 몰려가 ‘진실한 사람’을 외치는 장면은 그 하이라이트다. 새누리당 내 핵심 당직자들 사이에는 “총선 전 친박계가 신당을 꾸려 여야 4당 체제로 선거를 치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친박 신당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야당은 정리할 일만 남았지만 여당은 터질 일만 남았다”(새누리당 정두언 의원)는 예상은 과연 현실화될 것인가. 야권에 이어 여권 분열의 시나리오가 새누리당을 휘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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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는 여야 두 당씩의 4당 구도로 선거를 치르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올인하고 있는 쟁점 법안들이 임시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비박계와의 대립이 거칠어질 경우 친박계와 진실한 사람들이 새롭게 당을 꾸릴 가능성은 더 커진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친노계가 새천년민주당을 뛰쳐나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와 같은 방식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의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비박계 의원이 최근 송년 모임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당 공천제도 특별위원회가 꾸려져 공천 룰 관련 논의를 막 시작하자 새누리당에선 ‘야권의 헤쳐 모여식 분열의 광풍이 새누리당으로 몰아칠 수도 있다’는 우려들이 번져 나가고 있다.

친박 신당론으로 귀착되는 논리적 전개는 이렇다.

‘①청와대는 연일 쟁점 법안에 대한 처리를 놓고 국회와 대립 중이다. 정치권은 국가적 위기를 외면한 채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싸움에만 매몰돼 있다. 국회를 향한 대통령의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국회에 대한 국민심판”을 말하던 박 대통령은 이제 “역사의 심판”을 말하기 시작했다→②선거구조차 획정 못하는 여야의 정쟁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를 자아낸다. 대통령이 말하는 심판론의 대상은 야당뿐만이 아니다. 지난여름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찍어낸 박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구별하고 있다→③김무성 대표와 비박계는 비박계가 우세한 현 당내 구도를 지키려 한다. 친박계의 물갈이
론 관철과 대세 장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④야당의 분열은 여당 분열의 촉매제다. 친박계 일부는 비박계와 결별한 뒤 친박당 vs 비박당 vs 문재인당 vs 안철수당의 4당 구도로 총선을 치른다면 지지층이 단단한 친박당이 제1당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흐름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둔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의 창당 때도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의 주류 세력이 당을 뛰쳐나갔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쌓인 친노-반노의 갈등이 대선 후에도 해소되지 않자 친노계 핵심들이 당을 떠났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처럼 충성도가 큰 고정 지지층이 있는 경우에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이 신당 창당 중심 설 지가 변수”
실제로 친박 신당의 출현 가능성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선 전문가들마다 견해가 나뉜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야당이 지리멸렬하면 할수록 박 대통령과 친박계들로선 김무성 체제를 무너뜨리고 싶은 유혹이 더 강해질 것”이라며 “친박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공천권을 장악하려 들고 이에 비박계가 크게 반발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그동안 새누리당이 보여줬던 DNA를 고려하면 친박계가 지금 따로 당을 꾸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각 계파는 당내에서 큰 싸움을 벌인 뒤에도 ‘결별’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 적이 별로 없다. 특히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가 사생결단식 싸움을 벌였지만 당은 쪼개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박 대통령이 신당 창당의 중심에 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 교수는 신당 출현의 가장 큰 변수로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경제 관련 입법이 결국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박 대통령이 이번 총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향후 국정 추진 동력 확보를 위해 새누리당의 안정적 과반 획득을 목표로 삼을지, 아니면 이후 정권 재창출 과정의 헤게모니 다툼까지 염두에 두고 이번 총선을 여권 내부의 리더십을 재편하는 기회로 볼 지가 가장 큰 변수라는 뜻이다. 친박 신당 출현 가능성을 낮게 봤던 박형준 총장 역시 “박 대통령이 나선다면 친박 신당의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이 일을 가능케 할 친박 내 구심점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친박계들은 실제로 친박 신당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을까. 청와대 내부 사정에도 밝은 친박계 핵심 의원은 중앙 SUNDAY와의 통화에서 “야권의 분열이 새누리당에 통합의 계기가 아니라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전문가들 중에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결국에는 함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지 않으냐. (비박계 우위의) 현 당내 세력구도를 어떻게든 끌고 나가려는 김 대표와 ‘물갈이를 병행해야 한다’는 친박계의 주장이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야당의 분열이 여당에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신당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가동 중인 플랜은 아직 없다”며 “지금 당장 신당
창당을 말하는 것도 조금 이르다”고 했다.

비박계 “신당설 나오는 건 항복하라는 협박”
이에 대해 김무성 대표와 가까운 비박계 의원은 “친박계 핵심 의원들이 여기저기에서 신당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당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게 사실”이라며 “공천 룰 전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김 대표에게 ‘당이 쪼개질 수 있으니 우리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이라며 항복을 요구하는 협박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친박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의 파괴력은 어떨까. 김형준 교수는 “(여당과 야당이 모두 분열해) 다지구도가 만들어진다면 특정 지역에서 강한 고정 지지층을 보유하는 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30%의 고정 지지층, 영남 지역이라는 확실한 지역적 기반, 특화된 보수 이념을 갖고 있는 친박당이 다른 어떤 세력보다 우세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새누리당 내 전략통 인사도 “대구·경북(TK)지역은 한두 지역구를 제외하고는 싹쓸이가 분명하고, 충청과 부산·경남·울산·강원 등에서도 몰표가 쏟아질 수 있다”며 “친박계는 비례대표까지 100석 넘겨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응답자의 43%가 “잘하고 있다”고 답변한 12월 15~17일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조사에서도 TK지역에서의 “잘하고 있다” 평가는 60%로 가장 높았다. 이어 충청이 53%, 부산·경남이 50%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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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때 박 대통령이 당에 잔류했음에도 당 밖에 꾸려진 ‘친박연대’(14명·지역구 6명 비례대표 8명)와 ‘친박 무소속 연대’(지역구 12명)는 모두 26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 역시 ‘박근혜 브랜드’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2008년의 친박연대는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와 연대했기 때문에 돌풍이 가능했지만 현재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는 김무성 대표라 사정이 다르다”며 “정치는 명분과 인물인데 친박 신당엔 당선될 수 있는 인물군도, 명분도 약하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새누리당의 비박계 핵심 당직자도 “여권 지지층들이 바보인 줄 아느냐. 친박 신당이 생기면 이들은 여권에 표를 주지 않고 돌아설 것”이라며 “여당이 참패하는 친박·비박 공멸의 총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친박 신당설과 총선 4당 대결론이 이미 새누리당 내부뿐 아니라 야권 인사들의 선택지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야당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가능성이 거론되는 김한길 전대표도 여권의 분열 가능성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그는 여야가 한꺼번에 분화될 경우 새정치연합을 떠나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더라도 수도권 싸움에서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승욱·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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