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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서 옛 연인 찾아 합법적 스토킹하는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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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22면

일러스트 김옥

페이스북에 ‘싫어요’가 생긴다는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었다. 기사에는 마크 저커버그가 어느 강연장에서 했던 동영상이 첨부돼 있었다. “페이스북을 투표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싫어요’ 버튼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이 요청해왔어요. 싫다는 투표가 아니라, ‘공감’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싫어요’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최근 난민 위기,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거나 하는 일을 포스팅하면, 거기에 ‘좋아요’를 누르기는 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친구들은 당신에게 공감을 표현하고 싶은 거겠죠. 그래서 ‘좋아요’ 외에 다른 옵션을 만들기로 한 거예요. 간단해 보이지만 ‘싫어요’ 버튼 하나를 만드는 건 사실 놀랄 정도로 복잡한 작업이에요. 이제 곧 테스트에 들어갈 거 같고, 그 결과에 따라 그걸 넣겠죠.”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카카오톡’에 메시지 보내기 취소 기능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런 기능이 생긴다면 술에 취하거나 감상에 젖어 옛 연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밤새 괴로워한다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잘못 보낸 메시지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사건이 확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페이스북은 ‘싫어요’ 버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헤프닝처럼 일어난 ‘싫어요’ 버튼 하나로도 사람들의 찬반 의견이 갈렸고, 댓글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페이스북·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텀블러 등등) 24시간 소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인 첫 세대이니까 말이다.


내가 핸드폰을 바꾼 건 딱 세 번이었다. 한 번은 잃어버려서, 두 번째는 5년 전 여름 한 통신회사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에. 그들은 트위터(결국 네이버 플랫폼인 ‘미투데이’에 에세이를 연재했다)에 소설을 연재하자고 했다. “트위터요? 그게 뭔데요?” 당시 나는 할머니들이나 쓸 법한 구식 폴더폰을 쓰고 있었는데, 물론 그걸 바꿀 계획 따윈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SNS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그날 오전에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SNS에 뭔가를 연재하는 (내가 알기로는) 첫 소설가가 되었다. 그 ‘뭔가’가 소설이 아닌 것은 틀림없었고 ‘에세이’ 비슷한 넋두리이긴 했다. 그것은 ‘디지털계의 네안데르탈인’에 가깝던 내겐 140자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을 뒤바꿔 놓았다. 한 달 만에 친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해서 1만 명을 훌쩍 넘어 2만 명을 향해가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빠른 속도로 내 인터넷 친구들은 자꾸만 늘어갔다.


나의 현재’와 ‘타인의 현재’가 끝없이 경쟁그즈음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개봉했다. 영화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만들어진 이유는 순전히 그가 여자친구에게 차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홧김에 자신의 블로그에 여자친구의 실제 브라 사이즈를 폭로하고, 해킹 실력을 발휘해 하버드 여대생들의 사진을 올린 비교 사이트를 만든다. 그리고 학교 측에 그 사실이 발각돼 ‘6개월 보호관찰 대상자’로 지정된다. 한순간 악명을 떨치게 된 그는 비밀 엘리트 클럽의 윙클보스 형제에게 하버드 학생들만 교류할 수 있는 ‘하버드 커넥션’ 사이트 제작을 의뢰 받는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폐쇄적인 하버드 커넥션 대신 여러 대학들이 동시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페이스북을 개발한다. 페이스북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의 대학생까지 열광시키고, 무료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 ‘냅스터’의 창시자 숀 파커의 참여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된다.


최근에 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과거를 돌아보기에 적당한 플랫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는 ‘현재’(특히 위치 기반 서비스로 내가 있는 곳을 특정하는 행위)에 맞춰져 있는 이 플랫폼은 사람들의 ‘지금 이 순간’을 수집해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하는데, 사실 ‘과거’란 어떤 의미에서 사업에 활용할 가치가 적거나 (거의) 없으므로 꾸준히 ‘현재’를 수집하는 게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이다. 심지어 이 플랫폼은 끝없이 ‘나의 현재’와 ‘타인의 현재’를 경쟁시킨다.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피드 기능은 끝없이 우리의 ‘현재’를 ‘과거’로 만들고, 더 깊은 과거 속으로 떠밀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유독 소셜 네트워크를 불편해 했던 가장 큰 ‘기능적인’ 이유가 이전의 기록을 찾는 과정이 너무 번잡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이곳에선 과거가 현재에 비해 터무니없이 불공평한 대접을 받기 때문인 것이다. ‘카르페 디엠’의 현현이라 말하기엔 자본주의적 속성을 투영한 이 플랫폼은 두께가 너무 얇아서, 이 공간에서 과거는 쌓이지 않고, 그대로 쓸려 나가 버리기 십상이다. 물론 ‘1년 전 오늘’이나 ‘2년 전 오늘’ 같은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그것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선’이라기보다 일종의 ‘점’처럼 어느 한 순간만을 보여주고 파도처럼 쓸려 나간다.


현실의 친구보다 ‘페이스북’ 친구를 더 챙기는 세대영화의 카피가 “5억 명의 ‘친구’가 생긴 순간 진짜 친구들은 적이 되었다!”라는 점은 어떤 면에선 매우 상징적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친구를 지키느라 오래된 친구와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사람들을 이제 쉽게 마주친다. 특히 10대나 20대의 경우, 친구가 생일 축하 전화를 걸면 도리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축하 글이나 ‘좋아요’를 부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그런 방증이다. 소셜 네트워크에 관심이 없다거나, 단지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기 때문에 절교 당했다는 사연을 읽는 일 역시 빈번해진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 심리학』이란 책에서 나는 근래 들어 가장 끔찍한 이별의 한 풍경을 보았다. 무엇보다 결별을 고하는 방식이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비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날 저녁 샘은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리사(샘의 약혼녀)가 자신의 ‘가족 및 결혼/ 연애 상태’를 ‘약혼’에서 ‘연애 중’으로 바꾸었음을 발견했다. 더욱 놀랍게도 ‘~와 연애 중’이라는 표시 옆에 더 이상 샘의 사진이 없었다. 대신, 샘과 가장 친한 친구의 사진이 있었다. 샘은 즉시 리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리사가 샘의 가장 친한 친구와 지난 3개월 동안 사귀었으며 두 사람 모두 이제 그에게 알려야 할 때가 왔다고…결정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영화의 마지막이 헤어진 여자친구(첫 장면에서 마크 저커버그에게 엄청난 열패감을 안겨준 바로 그 여자!)의 페이스북 사이트를 알아내 ‘친구 추가’를 누르는 저커버그의 클로즈업 샷으로 끝난다는 건 여러 면에서 웅변적이다. 페이스북이 ‘과거의 사람들’ 즉 구 여친, 구 남친을 시대착오적인 개념으로 만든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원하는 순간 옛 연인을 합법적으로 스토킹할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5억 명이나 되는 친구가 있는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끝없이 ‘새로 고침’을 누르며 자신의 친구 요청이 받아들여지는지 확인하는 모습은 그 어떤 독백보다 은유적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마크 저커버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우리의 시간관이, 우정관이,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이 어떻게 변하게 될는지, ‘좋아요’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싫어요’를 표현하게 될는지 말이다.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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