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아베 ‘위안부 결단’만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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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무슨 생각할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8일 방한한다. 일본 측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협상의 대상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25일 오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머리 위로 햇살이 비치고 있다.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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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左), 아베 총리(右)

25일 새벽 1시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서울 도렴동 청사에서 나와 한남동 공관으로 향했다. 윤 장관은 7시간 전인 전날 오후 6시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에게 연내 방한을 지시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 직후 당국자들을 불러모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넘겨 ‘마라톤 전략회의’를 한 것이다. 공관에 돌아간 뒤에도 윤 장관은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참모진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이슈추적] 윤병세·기시다 28일 서울 담판
“일본, 법적 책임 끝났다지만
정부예산으로 피해자 지원 땐
사실상 불법행위 배상 의미”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은 25일 오후 4시 공동으로 “윤 장관과 기시다 외상이 28일 오후 서울에서 회담한다”고 발표했다. 장관 회담 하루 전인 27일에는 서울에서 국장급 협의를 연다.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올해를 불과 사흘 남기고 한·일 외교 수장이 위안부 피해 문제를 해결하는 담판을 하는 셈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바둑으로 치자면 이제 끝내기”라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치적 결단만 남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그간 11차례에 걸친 국장급 협의에서 나올 것은 다 나왔다”며 “외교 협상에서 100대 0은 있을 수 없다. 51대 49로 가면서 서로 자기 쪽이 51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합의를 이뤄내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남은 쟁점은 세 가지다.

 ①일본의 법적 책임=핵심 쟁점은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과 그에 따른 배상이다. 한국은 일본 정부가 불법으로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일본 측은 “법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 왔다. 양측은 협의 결과 일본이 피해자들을 위해 금전적 지원을 하면서, 그 성격에 사실상 양국의 입장을 모두 담자는 쪽으로 의견 차를 좁히고 있다고 한다. 국가의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하는 ‘배상금’이 아니라 ‘사죄금’ 혹은 ‘속죄금’으로 이름 붙이면서도 일본 정부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일본은 95년에도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려 했으나 일본 정부 예산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민간 모금이라는 점을 강조해 피해자들이 수령을 거부했다.

 국민대 이원덕 일본학연구소장은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하는 행위는 법적 책임을 전제로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반면 명확히 배상금으로 이름 붙이지 않는 이상 일본 정부도 ‘65년 해결 이후 미흡한 부분이 있어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 것뿐’이라고 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고 평했다.

 ②사죄 주체와 표현=누가, 어떤 형식으로, 어떤 표현으로 사죄할지도 쟁점이다. 한국 측은 아베 총리가 사죄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국가 지도자의 이름으로 사죄하는 역사적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일본 측에서 이를 결단해주면 사죄의 형식이나 표현 등에선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이 성의를 보이면 우리도 박 대통령이 나서 이로써 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확인을 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일본의 소녀상 철거 요구=일본 측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소녀상은 이미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리는 큰 상징이 됐다.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글=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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