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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찰, 필리핀 한인 살해 용의차량 CCTV로 찾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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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필리핀 바탕가스 지역의 한 공사장 숙소. 필리핀 경찰관의 설명을 듣던 한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동환 총기분석실장은 침대 주변을 손으로 가리켰다. 추가로 탄피가 나올 만한 위치라는 것이었다. 권총 탄알의 발사 각도를 상상한 추리였다. 필리핀 수사팀은 이미 현장감식을 한 곳이었지만 다시 수색했다. 김 실장의 말대로 탄피 2개가 발견됐다. 총알 한 개도 추가로 나왔다.

42시간 분 영상 뒤져 흰색SUV 지목
현장서 탄알 1개 탄피 2개도 발견
강도 위장한 청부살인 가능성 제기

 필리핀 한국교민 조모(57)씨 살해사건 수사에서 중요한 단서들이 포착됐다. 한국 전문가들의 활약 덕이다. 조씨는 지난 20일 오전 1시30분쯤 이 숙소에서 복면 쓴 4인조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경찰청은 지난 21일 김 실장, 폐쇄회로TV(CCTV) 분석 전문가인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김희정 행정관, 서울경찰청 경찰관 2명 등 모두 4명을 현장으로 보냈다. 한국 경찰 창설 이후 강력사건 수사를 위해 인력을 해외로 파견한 첫 사례다. 이들은 4박5일의 활동을 마치고 25일 귀국했다.

 한국 수사팀은 탄피·총알 등의 추가 증거물을 발견한 것 외에도 다양한 성과를 냈다. 김 행정관은 현장 주변 CCTV 영상을 뒤져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용의 차량으로 지목했다. 그 뒤 42시간 분량의 인근 고속도로 CCTV 영상을 확인해 이 차량이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하는 모습을 찾아냈다.

 한국 수사팀은 이 사건이 강도로 위장한 청부살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범행 장소가 큰돈이나 귀중품이 있기 어려운 공사장 숙소라는 점, 범인들이 가져간 게 현금 1만 페소(약 25만원)와 전기밥솥 같은 자질구레한 물품이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 판단이었다. 단순 강도 사건으로 취급하던 필리핀 경찰은 이에 따라 조씨와 7년 전에 헤어져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현지인 부인의 통화 내역을 조사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영사로 근무했던 박외병 동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필리핀에서는 100만~200만원만 주면 청부살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필리핀 측의 요청이 있으면 파견팀을 다시 꾸려 보내겠다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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