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누리과정 예산 갈등, 정부와 정치권이 결자해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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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데는 여야와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3년 전 전면 시행한 것이 만 3~5세 누리과정이다. 젊은 부부들이 마음 놓고 애를 낳도록 국가가 보육·교육을 무상으로 책임져 저출산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만 5세를 대상으로 시작해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에 따라 2013년 확대됐다. 무상급식을 주창했던 야당도 반대하지 않았다. 현재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130만 명이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와 교육청 예산 핑퐁에 엄마들 분노
원초적 책임 있는 정치권, 총선 유불리만 따져
해법 찾기 위한 소통 서둘러 대란 막아야

 하지만 그간 곪았던 예산 문제가 터졌다. 애초 설계가 꼼꼼하지 않아 매년 ‘땜질’ 처방만 한 결과다. 새해 예산 4조원의 부담 주체를 놓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대립이 극단이고, 지방의회의 정치적 개입까지 돌출됐다. 어제까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 유치원·어린이집 예산을 모두 마련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야당이 지방의회를 장악한 서울·광주·전남은 교육감이 짠 유치원 예산마저 삭감해 새해 예산이 ‘0’이다. 야당이 다수인 경기도도 같은 상황에 몰렸다. 다른 시·도 교육청은 2~6개월 치 예산만 확보한 상태다. 결국 전체 예산 4조원 중 30%도 안 되는 1조원 남짓이 확보돼 보육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한데도 정부와 교육청은 양보 없는 기싸움을 한다. 진보를 주축으로 한 교육감들은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이니 정부가 책임지라”며 대통령 면담까지 요청했다. 교육감들은 지방교육재정부담금이 39조4000억원에서 41조2000억원으로 늘어도 인건비 증가분과 지방채 상환액을 감안하면 쓸 돈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회·정부·교육감·전문가가 참석하는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강경하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어제 “예산을 편성 않는 교육감은 대법원 제소, 재의 요구, 교부금 차감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국고 예비비 3000억원 외에 담뱃세 등 지방세수가 늘어 교부금이 1조8000억원 증가하고, 학생 수 감소로 예산 절감 요인도 있어 편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고든 교부금이든 모두 국민 세금인데 아이들을 볼모로 양측의 해석이 정반대인 것이다.

 이런 대립은 애초 정부와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 예산 문제를 촘촘히 따져보지 않은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귀를 닫고 여야는 서로 책임을 미루며 총선에 미칠 유불리만 저울질한다. 전면 무상보육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복지 천국 스웨덴은 셋째 자녀만, 영국은 만 5세부터 지원한다. 그런데 표 얻는 데 급급해 형편에 넘치는 공짜에 짝짜꿍했던 정부와 정치권이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교육감과 지방의회도 억지만 부려선 안 된다. 보육 문제에 무슨 정치적 잣대와 이념이 필요한가. 엄마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이다. 더 늦기 전에 청와대·정부·여야·교육감 등 관련 당사자들이 모여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기 바란다. 사회적 기구 구성이든 5자 회동이든 소통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