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민등록번호 변경, 혼란 없도록 세심한 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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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주민등록번호 유출 또는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 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번호 변경을 일률적으로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미 2011년 포털사이트 정보 유출, 2014년 카드 3사 정보 유출 등으로 상당수 주민번호가 유출돼 중국 등으로 흘러갔다. 따라서 이번 헌재 결정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이 이미 만천하에 공개된 주민번호를 계속 쓰면서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고 반복적으로 범죄 표적이 될 우려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결정이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해결하는 전기가 되려면 정부와 기업이 나서 타인의 주민번호를 쉽사리 수집해 각종 마케팅에 무단 활용하는 풍토를 뿌리뽑을 근본적인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제출돼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헌재가 개선입법 시한으로 정한 2017년 12월 31일 이전에 통과시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는 헌재의 지적대로 주민번호를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기관의 심사를 거쳐 변경할 수 있도록 행정 서비스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민번호 변경이 범죄자나 채무자가 신분을 세탁하거나 숨기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변경 기준과 절차를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주민번호가 변경되면 온갖 사이트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앞으로 법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를 막을 대책도 함께 세워야 한다. 인터넷과 관련한 산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수요는 커지게 마련이다. 정부는 국민이 개인정보 유출과 이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종합적인 인터넷 보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기회에 일부 개인정보가 들어 있는 주민번호를 아예 보안성이 강화된 새로운 전자인식 수단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보다 합리적이고 안전한 개인식별 방식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