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사 촌지 460만원 문제없다는 어이없는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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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제 법원이 학부모 두 명에게서 현금과 상품권 등 460만원어치의 촌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학부모가 부탁한 내용이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이 같은 법원 판단이 과연 건전한 상식에 맞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서울 계성초등학교 신모 교사의 금품 수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검찰이 적용한 배임수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배임수재죄는 재물 또는 이익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개재되지 않는 한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이 무엇을 부탁했는지 보자. 이들은 법정에서 신 교사에게 금품을 건네며 ▶과제 검사 때 혼내지 말아 달라 ▶시상식 때 차별하지 말아 달라 ▶생활기록부에 못하는 학생으로 적지 말아 달라 ▶아이가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통상 초등학생 자녀를 가진 부모로서 선생님에게 부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사회 상규에 어긋나거나 위법하게 또는 부당하게 처리해 줄 것을 부탁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생활기록부를 나쁘게 기재하지 말라거나 시상식 때 차별하지 말라는 것을 어떻게 “자녀들을 신경 써서 잘 보살펴달라는 취지”로 뭉뚱그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일을 모두 악의로 해석해서도 안 되지만 선의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금품과 함께 전달된 부탁 안엔 부정한 청탁이 내재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해 7월 서울서부지법이 “따돌림당하는 내 아이를 잘 돌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160만원의 금품을 받은 교사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것과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나아가 학교 측은 해당 교사에게 내린 정직 3개월 처분이 적정한지 다시 따져야 할 것이다. 금품 수수가 인정된 만큼 파면 등 중징계해야 한다는 교육청 입장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청정해야 할 교실을 오염시키고 있는 촌지 문화에 보다 엄격하고 단호한 자세로 대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