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징용피해 지원금과 무관 … 위헌심판 대상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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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일부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일제 징용자 유족이 낸 헌법소원
헌재 “청구가 법적 요건 못 갖춰
협정이 합헌이라는 건 아니다”
일 정부 “청구권 완전 해결”재강조

 헌재는 23일 “양국 간 청구권협정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과 관련한 재판에 직접 적용되는 법률이 아니어서 위헌법률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지원법)과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특별법) 조항 관련 청구에 대해서는 각하 또는 합헌 결정했다.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아버지를 잃은 청구인 이윤재씨는 2007년 지원법이 제정되자 아버지가 일하고 받지 못한 돈 5828엔을 달라고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 위원회’에 신청했다. 이 위원회는 법정 기준에 따라 1945년 해방 당시 1엔을 2005년 기준 2000원으로 환산해 1165만6000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이씨는 “미수금의 현재 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이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이후 2009년 재심의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낸 뒤 협정 2조 1항·3항과 지원법의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이씨는 “청구권협정은 협정일 이전에 발생한 사유로 인한 어떤 청구도 할 수 없도록 하고 지원법은 45년과 2005년 사이의 14만 배의 화폐가치 변화(금값 기준)를 반영하지 않아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씨의 헌법소원 청구 자체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헌재 관계자는 “협정은 이씨의 재판에 영향을 주는 지원금 지급의 직접적인 근거 규정이 아니라는 의미의 결정이다. 협정이 합헌이란 뜻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지원법에 대한 재판관들의 의견은 6대 3으로 갈렸다. 다수 의견은 “지원금은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지급되는 것이며 화폐가치의 차이를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한다고 자의적 입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 쪽(박한철 헌재소장, 이정미·김이수 재판관)은 “지원금은 노무의 대가라는 의미도 있다. 미수금의 현재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정 기준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특별법이 위로금 지급 대상을 대한민국 국적의 유족으로 제한하는 규정도 합헌(6대 3)으로 결정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22일 “재판소의 판단을 주시하겠다”고 밝히는 등 일본 정부와 언론도 헌재의 이날 선고에 관심을 보였다.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 13건이 한국 법원에 계류 중이고 양국 간 오랜 갈등 원인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 뒤 일본 외무성의 가와무라 야스히사(川村泰久) 보도관은 “한·일 간 재산·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한·일 관계 전진을 위해 쌍방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지지통신은 “헌재가 청구권 협정에 관한 헌법 판단을 하지 않아 (이 결정이) 한·일 간 외교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특별히 언급할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임장혁·유지혜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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