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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험수위 가계부채, 경고음 들릴 때 뇌관 제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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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은행이 22일 낸 금융안정보고서는 연간 두 차례 국회에 제출된다. 올해 두 번째 보고서를 펼쳐 들면 가계부채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보고서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경영 건전성이 높아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이 안정적이라고 봤다. 반면 가계와 기업은 재무 건전성이 현저히 저하됐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개별 경제 주체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금융시장 모니터링이 잘 이루어지고 있어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 우려는 없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완화로 재무 건전성 극도로 악화
과도한 빚이 소비 가로막는 ‘빚의 함정’ 우려
국회와 정부가 확실한 연착륙 방안 내놔야

 이 보고서를 받아 든 국회의원들은 여기서 그치지 말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 이 보고서의 메시지는 가계가 심각한 ‘부채의 덫(debt trap)’에 걸려 있어 소비를 하지 못하고 기업은 물건을 잘 팔지 못하면서 성장성이 크게 악화하고 있어 각별한 관리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계가 돈을 쓰지 못하면 경제는 금세 쪼그라든다. 기업 매출이 줄면서 생산활동과 일자리가 줄어드는 위축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한국 경제가 겉은 괜찮아 보여도 속으론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제 ‘전역’을 명 받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재임 중 정부는 부동산시장의 과도한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의 빗장을 확 풀었다. 그 결과 가계부채가 단기간에 급증해 12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 여파로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4.2%로 2008년 말에 비해 19.9%포인트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상승률인 1.6%포인트의 12배가 넘는다.

 후유증은 심각하다. 가계대출 문턱이 낮아지면서 소득능력을 초과해 수억원씩 빚을 얻어 집을 산 가계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금리인상 파고에 휩쓸릴까 불안해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안정보고서는 급격한 고령화로 50대가 곧 60대에 편입되면서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50대는 이미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한계가구 비중이 18.6%에 달한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이런 경고음은 그제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도 나왔다. 가구당 보유자산은 3억4246만원이고 평균부채는 6181만원인데 빚을 가장 많이 보유한 연령대는 50대로 나타났다. 이들은 66.2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하지만 실질 은퇴연령은 61.7세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게 돼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지명자는 경고음이 울릴 때 뇌관을 제거해 경제불안의 위기를 차단해주기 바란다.

 단기 대응은 어렵지만 해법은 있다. 기업 부문에선 좀비기업을 정리한 뒤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이 신성장 동력을 키울 힘을 실어주면 된다. 가계 부문은 변동금리의 고정금리 전환을 촉진해 가계부채 증가의 급한 불을 끈 뒤 주택연금 제도를 확대해 부동산 금융을 활성화하고, 퇴직자 맞춤형 일자리를 창출해 소득을 늘려주는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