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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슬람 테러단체 습격에 기독교도들이 생명 건진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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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2일 케냐 만데라 지역에서 알샤바브에 공격 당한 버스. 당시 얄샤바브는 기독교인만 골라 28명을 처형했다. [AP=뉴시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슬람 교도들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에서 기독교 신자들을 구하는 훈훈한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케냐 북동부 만데라주 엘와크에서 21일(현지시간) 버스에 탄 이슬람 승객들이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청년’이란 뜻의 얄샤바브는 아프리카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하며 아프리카에서는 IS보다 악명 높은 단체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알카에다와도 연계된 알샤바브 지도자를 잡기 위해 현상금 2700만달러(300억원)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에는 케냐의 가리샤 대학을 공격해 기독교 학생들 148명을 사살하기도 한 단체죠. 2013년에는 케냐 나이로비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에서 무차별 살상을 가해 한국인 여성 1명 등 67명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IS에 충성을 약속하며 국제테러 조직으로 확산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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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하는 알샤바브는 지난 10월 IS에 충성을 맹세했다. [AP=뉴시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만데라를 출발해 수도인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에는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이 섞여 타고 있었죠. 한참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엘와크에서 갑자기 총격을 받았습니다. 총탄은 버스를 뚫고 들어왔고 급정거를 했죠. 그리고 총을 든 알샤바브 대원들 10여명이 올라탔습니다. 이들은 무슬림은 그대로 남아 있고 기독교도는 나오라고 협박했습니다. 이들을 처형하기 위한 협박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승객들은 “우리 모두를 죽이든지 아니면 그냥 놔두라”며 버텼습니다. 지난해 11월 만데라에서 알샤바브가 기독교도 28명을 선별해 처형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승객들은 총격 직후 테러 공격을 직감하고 기독교 승객들에게 이슬람 복장과 물품을 건네줘서 위장을 하도록 도왔습니다. 이슬람 승객 무함마드 압디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얄샤바브라는 걸 알고 모두가 이슬람 복장을 벗어서 건네줬다”며 “기독교도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상자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총격으로 2명의 승객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저항으로 알샤바브는 나머지 승객 60명을 놓아줬습니다. 버스는 경찰의 경호를 받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알리 로바 만데라 주지사는 데일리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승객들의 용기로 결국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만데라주는 알샤바브의 근거지 소말리아와 접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렇다 보니 알샤바브의 공격이 빈번했고, 지난해만 2000명 이상이 이 지역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테러로 반이슬람 움직임이 전세계에서 조금씩 발현되는 가운데, 이슬람교도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인류애와 형제애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줬습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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