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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GOOD WOR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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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WORK/하워드 가드너.미하이 칙센트미하이.윌리엄 데이먼 지음/문용린 옮김, 생각의나무, 1만3천원

급변하는 기술, 날로 커져만 가는 시장의 힘, 기업 환경 변화 등…. 현대의 직장인에게는 이 모든 변화가 그대로 스트레스다. 그 와중에 많은 직장인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치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지켜왔던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하워드 가드너 미국 홉스 대학 인지학과 교수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클레어몬트 대학원 교수, 윌리엄 데이먼 스탠퍼드 대학 교육학과 교수가 공동 집필한 'Good Work'는 그런 문제로 고민해 본 직장인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 될 만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업무 수행능력이 탁월해야 함은 물론이고 사회적.도덕적 책임감까지 강해야 존경을 받는 직장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면 직장을 떠나 일 개인으로서도 삶이 더 충만해지고 사회적으로도 존경으로 보상 받는다는 해석이다.

여러 권의 책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세 저자는 '훌륭한 직업인의 조건'이라는 프로젝트를 맡아 각자 유전학계.언론계.재즈음악계.연극계.교육계.영화계 등 12개 분야의 전문가들을 심층 면담했다. 이 책에는 그 중에서 언론계와 유전학계를 집중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유전학계의 경우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 유전공학 관련 기업이 아직까지는 인류의 건강 증진과 생명 연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조화롭게 일을 하고 있는 반면 언론계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비판과 견제의 기능을 강조하는 언론인과 가벼운 읽을거리를 쫓는 독자, 그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진이 서로 엇갈리며 혼란스런 모습이다. 미국의 이야기지만 국내의 상황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각 분야에서 프로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다시 점검하는 거울로 삼으면 유익하겠다. 프로들이 갖춰야 할 사명, 직무수행기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싸고 교육계가 떠들썩했는데, 이 책의 저자들이 이 책의 전반부에서 말한 우수한 교사의 자질이 흥미롭다.

먼저 교사의 사명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지식을 가르쳐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도덕적 본보기로서 교양을 갖추고, 모든 학생과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공평한 관계를 유지할 것 등이 요구된다. 교사 등 프로직장인이 갖춰야 할 정체성에 대해서는 일화를 빌어 '거울테스트'(mirror test)라는 측정법을 내놓고 있다.

런던 주재 독일 대사로 부임했던 어느 인물의 이야기다. 그 대사는 축하 행사의 일부로 영국인에게 매춘부까지 제공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그 즉시 그 대사는 대사직에서 물러나는 길을 택했고, 나중에 그 이유를 묻자 "아침에 면도하면서 거울 속에서 '포주'를 볼 수는 없는 것 아니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떳떳할 때에만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이해 집단이 갈등을 빚는 언론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자질도 높은 도덕성을 보인다. 미국 언론계 스타 1백명 가량의 인생 목표와 비전, 그것을 추구하면서 겪는 두려움과 난관 등이 드러난다.

한 잡지 기자는 성공 비결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명인사가 되려는 생각없이 시민들의 개성과 인격에 관심을 두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아량과 호기심, 인내심을 길렀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언론인들은 나름대로 힘의 남용과 오보를 막는 장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인기 방송인인 톰 브로코의 경우 '버디 시스템'(buddy system)을 확보했다. 자신이 방송인이기 때문에 신문쪽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의 유능한 기자를 친구로 사귀어 서로 감시자의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훌륭한 직업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저자들이 제시하는 방편은 다섯 가지. 각자 일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 평소 추구했던 가치를 구체화하고, 이미 있는 기구의 가치를 재확인하거나 그 기능을 확장하고, 각자의 가치관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이해집단 간에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항상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학자들의 글이어서 조금 딱딱한 게 흠이지만, 이 책에는 직장에서도 성공하고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들어 있음에 분명하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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