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뇌관

중앙일보

입력

예상보다 빠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전에 글로벌 금융시장 한쪽에서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정크본드(비우량 회사채·하이일드) 시장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달러 표시 정크본드의 평균 가격이 지난주 금요일 2% 넘게 떨어진 데 이어 월요일인 14일에도 1.5% 하락했다”고 15일 전했다. 지수 정점과 견줘 16% 정도 떨어진 것이다. 채권 가격치곤 폭락이다.

정크본드는 양적 완화(QE) 덕분에 가격이 치솟았던 대표적인 자산시장이다. 신용등급 BBB- 미만 회사채가 대부분이다. 국제원유 가격이 치솟을 때 미국 셰일에너지 회사들이 대거 발행한 채권이기도 하다.‘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최근 “곧 폭발할 화약고”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장 먼저 거품이 꺼질 수 있는 곳이란 얘기다.

정크본드 가격이 떨어지자 투자자들이 긴급 대피에 나섰다. 정크본드 펀드런(Fund Run: 환매사태)이 시작됐다. 미 월가의 자산운용사인 서드애비뉴는 정크본드 펀드의 환매가 줄을 잇자 끝내 펀드 청산을 선언했다. 펀드 자산 규모는 7억8900만 달러(약 9300억원) 정도였다.

톰슨로이터는 “서드애비뉴는 방아쇠였다”며 “이후 펀드런이 다른 정크본드 펀드로 전염됐다”고 이날 보도했다. 실제 루시더스캐피털이 14일(현지시간) 하이일드펀드(자산 9억 달러) 청산을 선언했다. 정크본드에 주로 투자한 헤지펀드인 스톤라이언캐피털은 환매를 중단했다. 너무 많은 투자자가 한 순간에 ‘내 돈 내놓으라!’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크본드 펀드런은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피델리티가 일본에서 운용 중인 하이일드펀드 자산이 가파르게 줄어 끝내 15일엔 1조 엔 밑으로 떨어졌다.

다만 국내 하이일드 채권 시장엔 아직 큰 변화가 없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연초 이후 매월 1000억원 대 수준이던 글로벌 하이일드 펀드의 자금 유출 규모는 9월 이후 300억~400억원 대로 줄었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하이일드 채권 투자금 대부분이 펀드에 집중되다 보니 직접 영향을 받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크본드 위기가 실제 발생하면 파장이 1980년대 중반 1차 정크본드 사태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정크본드 시장은 대중화되지 않았다. ‘정크본드 황제’ 마이클 밀켄(당시 투자은행 드렉셀번햄램버트 임원) 등 ‘월가의 선수들’이 주로 활동하던 무대였다. 그 시절 기업은 인수합병(M&A)을 위한 단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로 정크본드를 발행했다.

반면 요즘은 하이일드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통해 정크본드 대중화가 상당히 이뤄졌다. 심지어 QE로 채권투자 수익률이 낮아지자 미국 대학 기금들도 정크본드를 적잖이 사들였다. 미국 정크본드 규모만도 1조2000억 달러 이상이다. 골드먼삭스는 “정크본드 시장이 무너지면 글로벌 증시도 타격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크본드(Junk Bond)='쓰레기같은 채권'이란 뜻이다. 마이클 밀켄이 비우량 채권을 '정크(쓰레기)'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됐다. 또 다른 이름은 하이일드(고수익) 채권이다. 신용등급이 BBB-도 안 되는 회사채가 대부분이다. 고수익을 노릴 수 있지만 시장이 출렁이면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강남규·정선언 기자 dism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