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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모델, 혁신·소득·동반성장 보완해야 지속 가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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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11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박근혜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왼쪽부터)가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비즈니스 서밋에서 각국 경제 대표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1960년대에 일본에서, 70년대에 한국에서, 80년대에 중국에서 출현했다. 서구 자본주의의 네 가지 발전모델인 영미형(미국 등), 라인형(독일 등), 노르딕형(스웨덴 등), 지중해형(스페인 등)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발전모델로 정립됐다. 대표적 국가들인 일본·한국·중국이 달성한 세계 사상 유례가 드문 고도 경제성장은 ‘동아시아 기적’이라고 불렸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산업정책 ▶내부자 통제 기업 지배구조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 ▶장기고용과 연공임금제도 ▶전략적 개방과 수출 촉진 ▶자본통제 등이 특징이다. 경제발전 추진을 위해 국가가 경제에 강력하게 개입하고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며 금융이 산업자본에 기여하도록 강제하고 국제 자본이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와 세계적 신자유주의 물결이 고조되고 그에 대응한 국내 경제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크게 전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1990~2000년대의 장기 침체기인 ‘잃어버린 20년’, 한국은 97년 파국적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일본과 한국의 발전모델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중국에서 출현한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개혁·개방 과정과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성립했다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산업정책과 금융억압 및 자본통제라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핵심적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중국 모델도 90년대 이후 큰 전환을 한다. 

시장화·민영화 따라 정부 역할 줄어지난 20~30년간 동아시아 발전모델에는 시장화·민영화·자유화·유연화라는 네 가지 주요한 제도적 변화가 나타났다. 계획경제 혹은 명령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 국영기업의 민영화, 교육·의료 등 공공사회 서비스의 상품화,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경제 각 부문에서 큰 제도적 변화가 나타났다. 시장화와 민영화에 따라 정부 역할이 줄어드는 ‘작은 정부’ 현상이 나타났다.


 아마도 가장 중대한 제도적 변화는 금융 자유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자유화는 기업 지배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금융 자유화는 금융시스템을 은행 중심 체제에서 시장 중심 체제로 전환시켰다. 특히 자본 자유화는 기업 소유구조에 변화를 초래했다. 일본과 한국 상장기업의 주식 소유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 이후 급격히 증대해 현재 30~35% 수준에 이르게 됐다. 일본의 경우 주거래은행의 주식 소유 비중이 80년대 20% 수준에서 5% 이하로 하락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로 하여금 주가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 원리를 채택하게 강요했다. 기업경영이 주주가치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압력이 기업 지배구조를 관계 지향적이고 이해관계자 지향적인 모델로부터 시장 중심적이고 주주 지향적인 모델로 이행하는 것을 촉진했다. 그 결과 내부자 지향적이었던 일본의 게이레쓰(系列), 한국의 재벌, 중국의 국영기업(SOEs) 시스템에 주주자본주의 원리가 결합하는 하이브리드화(혼성화)가 이루어진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종신고용 축소금융 자유화와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에 따라 노동시장이 유연화됐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노동시장 유연화는 일본과 한국에서는 종신고용 일자리의 축소, 성과급제도의 도입과 연공임금제도의 약화, 비정규직의 급속한 증가로 나타났다. 또 중국에서는 종신고용에서 유기계약노동으로의 이행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92년 21.7%에서 2011년 35.2%로 많이 증가했다. 한국의 경우 2002년 27.4%에서 2011년 34.2%로 증가했다. 중국에선 계약노동자 비중이 84년 1.8%에서 95년 40.9%로 급증했다. 이러한 변화는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의 확대를 촉진하는 주된 요인 중의 하나가 됐다.


 정부·기업·금융·노동 부문에서 나타난 전환을 종합해보면,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새로운 모델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동아시아 발전모델에 영미형 발전모델의 요소가 결합해 하이브리드 모델로 전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화가 전형적으로 나타난 일본 기업의 경우, 예컨대 종신고용제도와 연공임금제도가 결합돼 있던 전통적 일본형 기업이 종신고용과 성과급제도가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기업인 ‘새로운 일본형 기업’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다수를 점했다.


 영미형 발전모델의 핵심 요소인 금융 자유화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핵심 요소인 산업정책 및 금융억압과 상충한다. 이처럼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요소가 섞인 혼성모델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불안정하고 장래가 불확실하며 그 고유의 역동성을 상실하게 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장기침체, 한국의 외환위기 이후의 저성장과 양극화는 상당 부분 이러한 하이브리드화의 부정적 효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전환 과정에서 거품 주도 성장, 금융 주도 성장, 일자리 없는 성장, 양극화 성장이라는 지속 불가능한 성장체제의 요소가 출현하였다. 그 결과 일본에서 거품 붕괴와 장기침체, 한국에서는 파국적 금융위기와 양극화가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소득 불평등의 급격한 심화가 초래됐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실현을 위해서는 혁신 주도 성장,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있는 성장, 동반성장이라는 지속 가능한 성장체제의 정립이 필요하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한국의 근혜노믹스 모두 이런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의 리커노믹스는 아직 이 방향으로 확실히 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동아시아 발전모델 정립을 위한 새로운 경제정책 패러다임이 동아시아에 등장해야 한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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