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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과급도 매달 나눠주면 통상임금에 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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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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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 고과평가에 따라 지급액이 변하는 성과형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근속연수와 업무가 같아도 성과에 따라 근로자별로 통상임금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연월차나 연장근로수당 같은 부가수당도 차이가 나게 된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6일 한국GM 근로자 1025명이 제기한 연월차수당 미지급분 청구소송에서 “전년도의 근무성적에 따라 연초에 지급액이 결정돼 12개월로 나눠 매월 지급하는 업적연봉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일시 지급하면 통상임금 아니지만
업적연봉으로 분할지급 땐 해당돼
이번 소송 주도한 노동계 일단 환영
근로자 간 격차 인정하게 된 건 부담

 그러나 귀성여비·휴가비·개인연금보험료·직장단체보험료는 “특정 시점에 재직하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등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논란이 일던 성과형 변동임금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통상임금 산정 여부를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해왔다.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임금도 고정성을 인정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이를 두고 하급심에선 판결이 엇갈렸다.

 한국GM은 전년도 인사고과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나눠 상여금을 차등 지급해왔다. 성과상여금 700%는 고과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된다. 대신 등급에 따라 25%씩 최대 100%의 상여금을 차등 지급했다. 인사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근로자는 800%의 성과상여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 상여금은 연말에 한꺼번에 주지 않고, 이듬해 업적연봉으로 가산해 12분의 1로 나눠 매월 지급했다. A등급 근로자는 매달 83만3333원을 기본급에 더해 받았다는 뜻이다. 최하 등급자보다 매달 25만원이 더 많다. 1심은 “근로자별로 지급금액이 달라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연초에 확정된 금액을 그해 근로의 대가로 지급했다면 고정성이 인정된다”며 통상임금으로 봤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인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회사가 연말 또는 이듬해 1월에 한꺼번에 근로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면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700%의 기본 성과급만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나머지 100% 범위의 차등분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이를 다음해에 분할해서 기본급과 함께 지급하면 성과급 전액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액수를 확정해서 주기 때문이다. 주는 방법에 따라 통상임금이냐 아니냐가 갈리는 셈이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성과·업적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지면 일단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려 했던 정부나 재계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판결”이라고 했다.

 역으로 이번 판결은 노동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동안 노동계는 성과형 임금체계를 강하게 반대해왔다. 근로자 간에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성과급을 받아들여도 근로자 간의 격차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소송을 노동계가 주도함으로써 성과에 따라 개인별 월급여나 수당에 더 큰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받아들인 셈이 됐다. 차등 지급되는 100%분의 성과급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을 땐 모든 근로자의 통상임금이 같았다. 그러나 이게 통상임금에 산입되면서 근속연수와 업무가 같더라도 성과에 따라 통상임금에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덩달아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연월차수당이나 연장근로수당도 확 차이가 난다. 같은 회사 근로자 간의 임금격차가 더 벌어진다. 이런 판결을 대법원으로부터 노동계가 얻어낸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통상임금의 범위가 어디까지냐의 문제보다 노동계가 성과형 임금에 따른 차등분을 인정한 데 더 큰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로선 이번 판결이 지급 방식을 둘러싼 노사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은 “기본적으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재확인하고, 논란을 잠재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지급방식을 둘러싸고 예상하지 못한 추가 고정비용이 증가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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