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ㆍ위문희 기자의 빈소정치⑬] 빈소 찾은 전두환 "YS와 역사적 화해인가" 질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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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84) 전 대통령이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았다. 이날 오후 4시 검은색 에쿠스 차량에서 내린 전 전 대통령은 건강한 모습으로 빈소로 들어섰다. 기자들에게 "수고들 하세요"라는 인사까지 건네면서다. 전 전 대통령은 YS 영정 앞에서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차남 현철씨와 가족들을 차례로 위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아프신 지 오래됐나?"
▶현철 씨="최근에 3년간 아프셨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현철씨 팔을 쓰다듬으며) 애 많이 썼어요. 연세가 많고 하면 다 가게 돼 있으니까…"
▶현철씨="건강이 좀 안좋으시다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나이가 있으니까 왔다갔다 하는 거지 뭐. 근데 이제 뭐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을 거야. 담배는 옛날에도 좀 못 피웠고 술은 군 생활하면서 마이(많이) 마실 때는 마이 마시고. 그런데 술도 맛을 몰라요, 나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우리 대통령께서는 상당히 장수하실 겁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근데 안하려 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담배 피우면 머리가 아파. 군대 생활 하는데 암기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사람 숫자도 알아야 하고, 부하들 이름도 많이 알아야 하는데 담배를 하면 머리가 휑휑 돌아."
▶현철씨="요새도 산에 가십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아유… 아니 못가."

빈소에서 10여분간 대화를 나눈 전 전 대통령이 "먼저 실례하겠다"며 오후 4시10분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전 대통령은 "(이번 조문이)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수고들 하십니다"라고만 답하며 빈소를 빠져나갔다.

전 전 대통령과 YS는 악연이 깊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가택연금 조치로 YS의 정치활동을 막았고, YS는 자신이 대통령에 오른 뒤 전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혐의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시켰다.

이날 빈소에선 생전에 YS를 모신 요리사와 운전기사, 경호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한규씨(김 전 대통령 요리사)="2003년부터 모셨습니다. 인자하신 분이었고 직원들에게 참 편안하게 잘해주셨습니다. 맑은 육수로 끓인 지리 대구탕을 특히 좋아하셨어요. 거제에서 올라온 대구로 끓인 대구탕을…"
▶김영수씨(김 전 대통령 운전기사)="그 양반하고 오래한 거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빈소에) 내내 있었어요. 초산테러(1969년 6월 20일 괴한 3명이 YS에게 질산이 든 병을 던진 사건)도 나하고 둘이서 겪었죠. 초산테러 얘기하려면 상당히 길어요. 내가 뭐 얘기할 필요 없어요. 우리 돌아가신 양반하고 나하고 둘이만 아는 거지. 그런 건 뭐…. 대통령 되시고 나서는 안 모셨어요. 대통령 되시기 전까지 모셨고. 3대 국회 들어갔을 때, 그때부터 모셨지. 4대 국회 때는 낙선하셨고. 청와대 가신 다음엔 한번도 안 만났어. 아프신 동안에는 못 만났지… 사모님은 상냥하신 분이었죠. 잘 해주셨지."
▶양재열씨(김 전 대통령 경호실 차장)="대통령 계실 때 측근에서 경호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조깅이 트레이드 마크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조깅을 통해서 저희 경호원들과 친숙하게 많이 지냈고. 해외 경호 때에도 아마 그런 것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대통령 되셔서 청와대 앞길도 개방하시고, 인왕산도 개방하시고, 국민들하고 상당히 많이 친숙한 그런 정책을 많이 하셨습니다."

나흘째 빈소를 지키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가까운 야당 의원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다. 이날 오전부터 새정치연합 양승조·조정식·이춘석·신학용·최원식 의원 등이 차례로 빈소를 찾았다. 손 전 고문은 빈소에 있는 원로 의원들에게 측근 의원들을 일일이 인사시키기도 했다.

15대 국회에서 YS의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정의화 국회의장도 오후 6시4분 빈소를 방문했다. 독일을 순방 중이던 정의화 의장은 조문을 위해 귀국 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정의화 국회의장="생로병사는 어쩔 수 없지만, 대통령께서는 산업화를 통해서 민주화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이시대의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영웅을 떠나 마음이 슬픕니다. 사회가 통합되고 그걸로 경제가 발전하고 통일로 나아가길 바랐셨을텐데 아쉽습니다. 영면하시길…. 고인의 서거가 여야의 정국 경색이 풀리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날 오후 7시까지 빈소를 다녀간 조문객 수는 총 1만1200명이다. 서거 당일인 22일 이후 지금까지 약 3만2700여명의 조문객들이 다녀갔다. 영결식은 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에서 치러진다.

김경희·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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